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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

연말결산

by 인권연대 숨 2024. 12. 26.
연말결산
잔디

 

올해 늦여름, 문득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쓴 커피가 혀에 닿고 목구멍을 지나 식도를 거쳐 위장에 도착했을 때쯤, 몸에서 기억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생각, 이 맛은 스무 살의 봄에 처음 맛본 자판기 블랙커피 맛과 닮았다. 물론 향은 에스프레소 쪽이 짙고 목 넘김도 훨씬 감미로웠으나 스무 살의 그해 봄, 아직 겨울의 기운이 가시지 않은 그때, 커피 맛을 잘 모르면서도 햇살 들어오는 동아리방에 혼자 앉아서도, 엄마랑 여섯 시간 떨어진 거리에서 처음 살게 되어 느끼는 알 수 없는 두려움 속에서도, 낯선 또래들과의 자유로운 대화에서도 백 원짜리 커피가 주던 잔잔한 위로는, 아직 커피보다 삶이 더 쓰다는 걸 알지 못했던 그때의 나를 지금 여기로 불러온다. 물론 쓴맛과 함께 어우러진 신맛과 약간의 단맛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한 지금.

잠은 죽어서 결국 많이 자게 될 것이니 살아서는 잠을 줄여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관념은 언제부터 내 안에 있었던 것일까? 밤에도 깨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어떻게 해서라도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좀 더 나은 어른, 사람의 상태가 어떤 것인지 잘 모르지만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졸고 있는 나를 깨우던 숱한 시간에서 벗어나 졸리면 자라고, 열한 시가 되면 되도록 이부자리에 누우려고 하고, 주말에 늦잠도 자고 누워있어도 괜찮다고 올해, 나에게 허용하였다. 물론 읽던 책을 마저 읽고 싶어서 졸린 눈 비비며 읽고 싶은 부분까지 읽으려하지만, 그것은 어떤 목적에 나를 사용하여 의무감, 당위성을 완성하려 하기보다 나의 호기심을 채워주려는 행위이다. 불안은 잠시 내려두고 편안하게 자도 된다는 걸 허용하는 지금이다. 내가 내 어깨 위에 올려놓은 어떤 것들을 잠시 내려놓아도 된다고 진정으로 나에게 말 거는 지금이다. 속으로는 울며 겉으로는 웃는 그런 웃음이 아니라 웃길 때 마음까지 웃는, 웃다가 너무 웃어서 눈물을 닦는 유쾌한 웃음을 웃는 지금이다. 졸리면 이제 자도 돼, 나야 잘 자, 오늘도 애썼어라고 말하는 지금이다. 이렇게 나에게 말해주는 데 참 오래 소요하였구나.

겉에서 보기에 여유롭고 느리고 쟤가 무슨 생각으로 저러나 싶다고 생각될 때에도 내 머릿속은 늘 분주했는데, 생각이 조금 한가해졌다. 책 한 권을 구입할 때도 (보이지도 않는) 눈치를 보거나 사도 되는지를 생각 속에서 백 번은 물었다면 그냥 사도 돼, 그렇게 눈치 보지 않아도 돼, 너는 네가 읽고 싶은 책을 사서 읽을 충분한 자격이 있어, 그러니 책을 사서 한 줄을 읽더라도 사서 읽어, 괜찮아하고 말하며 기쁘게 책을 사주고 읽는 모습을 보았다. 매우 기뻤다. 회사 옆에 있는 도서관에도 자주 방문하였다. 점심 식사 후에 가벼운 산책할 때에도 괜히 갔고, 퇴근 후에 곧장 마트로 가지 않고 읽을 책 바꾸어주려고 도서관에 갔다가 마트에 들렀다. 기껏해야 10분 내외로 소요되는 도서관 방문이지만, 나는 올해 나를 그곳에 두었다. 빨리 움직여서 빨리 집에 도착하지 않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심지어 그렇게 집에 들어와 아무도 나에게 잘 다녀왔냐는 인사를 하지 않아도 내 마음속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손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 저녁식사를 차리고 아이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보았다. 식사하며 웃는 모습도, 아무 말 없이 먹기만 하는 모습도 그냥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때론 같이 설거지할 사람? 묻기도 하고 함께 설거지하며 소소한 대화를 하였다. 거기까지 왔다. 너희들도 손이 엄마 손만큼 컸는데 왜 설거지하지 않느냐고 따지지 않았다(마음속에서도). 아이들과 집안일을 왜 분담하지 않냐고 나에게 따지지 않았다. 설거지를 왜 너의 일로만 여기냐고 나에게 따지지 않았다. 그저 설거지할 때 나의 손에 닿는 물의 느낌, 까치발하고 서서 설거지를 하는 나의 발바닥, 종아리의 느낌에 집중하였다. 설거지를 하는 행위에서 의무감, 두려움, 나를 누르고 상대를 찌르는 온갖 생각을 하기보다 그저, 그릇을 씻었다. 말끔해진 그릇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보았다. 그리고 자주 이런 마음들을 글로 썼다. 나를 위해서.

일상에서 갑자기 찾아 온 반갑지 않은 사건을 만났을 때 그 일이 일어난 걸 가지고 내 탓을 하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이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내가 그렇게 했다면 이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되풀이하며 과거를 고치려는 생각으로 나를 반복해서 괴롭혀 왔다. 원인과 결과를 생각하여 반응을 선택하는 사고의 과정이었다기보다 나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생각의 패턴을 지속시켜 왔었다. 그 생각의 끝에서 나를 제외한 세상을 구하려고 했다면 나는 지금 내 생각 속에서 나를 구해내고 있다. 구해내는 의도를 가지고 노력하고 있다.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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