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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89

시~~~~작! 시~~~~작! 잔디 기다렸다는 듯이 연두를 한꺼번에 튀겨내던 나뭇가지들은 어느새 연두를 키워 초록빛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매일 매일 옷을 갈아입는 나무들을, 만날 만날 꽃을 피워내는 꽃마리를, 아직 어린 연두를 키우는 감나무 가지 끝을 바라보는 일은 즐거움이다. 명치 끝에서 혹은 배 안쪽에서 간질간질한 무엇인가가 생겨나 몸 전체를 가벼움과 자유로움으로 채워주는 순간을 맞이하는 기쁨이다. 여기가 대추밭이야? 제비꽃밭이야? 감탄케 하던 밭에서 이제 제비꽃도 대추나무싹도 같이 자란다. 대추나무 몸에서 연두가 쏟아져 나온다는 것은 봄이 할 일을 다했다고 해석한다. (물론 봄이 여기에 더 오래오래 머물러주기를 바란다.)요사이 초록과 파란 하늘의 경계가 한결 더 아름답다. 서로 어우러져 피어나 뒤서거니 앞서거니 하.. 2024. 4. 25.
다시, 뒷집 할머니 다시, 뒷집 할머니 잔디 아침에 일어나 할머니 집 마루 문이 열렸는지 닫혔는지 따뜻한 물을 마시면서 쳐다본다. 요양보호사 선생님 차가 아침 여덟 시가 되면 지나가는지 지나가지 않는지를 본다. 어~ 오늘은 일곱 시 오십 칠 분에 오셨네. 일찍 오셨구나. 선생님을 하니는 짖지 않고 반기는구나. 내가 할머니한테 가려고 우리 집을 나서기만 해도 짖는 녀석이. 스읍! 열한 시에는 빨래를 널고 요양선생님은 하얀 차를 끌고 가시는구나. 할머니 마당을 쳐다만 보지 말고 할머니께 오랜만에 가볼까? 이따가 가볼까? 이런 저런 마음들이 왔다 갔다 하는데, 오후엔 그냥 아무 마음 없이 햇살을 등지고 달래를 캔다. 우리 식구 먹을 거랑 할머니 거랑 캐야지. 한참 캐다보니 누군가 나를 부른다. 거기 있는 거 캐면 어떡 하냐고. .. 2024. 3. 26.
우리 뒷집 할머니 우리 뒷집 할머니 잔디 설연휴 전날 트럭에 짐을 가득 싣고, 할머니 앞집으로 이사를 했다. 드디어 우리 뒷집 할머니의 앞집 사람이 된 것이다. 외딴집 생활을 십 년 넘게 한 나는 할머니는 어떤 마음으로 외딴집 생활을 해오셨을까 생각해 본다. 할머니 연세가 올해 95세이신데, 할머니가 스무살에 혼인을 하셔서 이곳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셨다고 가정할 때, 할머니는 칠십 년 이상 외딴집 생활을 하셨을 것이다. 외딴집은 마을에 혹은 마을 구성원이기도 하지만 외딴집만의 어떤 자유로움, 소속되지 않을 그런 포지션을 함께 소유(?)하고 있다. 그래서 소속감으로 충만하기도 하지만, 가끔의 외로움이 찾아온다. 물론 아이들이 어리고 숨 쉬는 것조차 잊어버릴 때에는 외로움이라는 것이 나를 모르는 체하지만, 가끔 의자에 엉덩이.. 2024. 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