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프 미’ 스물여덟 번째 책 ‘와해된, 몸’- 크리스티나 크로스비 著, 에디투스 刊, 2024
나에게 장애는 공기와 같은 것 - 이구원
나에게 장애는 공기와 같은 것이다. 장애가 있는 내 몸을 자긍심의 근거로 여기지도 않지만 딱히 비극과 불행으로 여기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장애가 없었던 몸의 경험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장애를 무기력하고 불행한 것으로 만드는 이 사회구조와 사람들의 인식과 태도에 대해서 분노와 좌절감을 종종 느낀다. 그렇기에 많은 중도 장애인 혹은 진행형 장애인들이 겪는 상실과 고통으로서의 장애에 대해 깊이 공감하지는 못했다. 그렇기에 “와해된, 몸”이라는 책을 읽고 다양한 생각과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한순간의 사고로 겪게 된 저자의 장애, 그와 동반한 고통과 상실의 감정들, 또 오빠 제프의 질병으로 인한 진행형 장애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기억과 감정들이 눈 앞에 펼쳐진 것처럼 기록되어 있어 가슴이 저릿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제프에 대한 기록은 지속적으로 저하되는 신장의 기능을 얻게 된 나의 입장에서 좀 더 아프게 다가왔다. 굳이 따지자면 나의 지금 상태는 제프의 장애 초기 상황과 더 가깝긴 하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좋았던 것은 장애에 대해 억지로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장애를 무조건 비극적이고 불행한 것으로 여기는 관점도 거부하지만 애써 장애에 대한 긍정적이고 밝은 의미를 찾는 것도 지극히 비장애인중심주의적 관점으로 느껴져 불편하다. 그런 면에서 저자는 참 솔직하다. 다만 비장애인 시절의 찬란하고 아름다웠던 기억에 비해 장애 이후의 기억이 지나치게 대조되는 점에서는 약간의 답답함을 느꼈다. 그렇다고 저자의 입장과 감정을 이해 못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지 손상이 없는 상태를 나를 잃지 않은 것이라 외치는 것-발달장애인은 나를 잃은 것인가?-, 더 구체적으로는 그 외침을 어떤 코멘트도 없이 기록한 것에 대해서는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다.
굉장히 섬세하면서도 감정적인, 하지만 논리성을 잃지 않은 서술은 힘들 수도 있는 책의 내용을 읽기 쉽게 만들어 주었다. 돌봄과 젠더, 사회적 관계 등 다양한 측면을 고찰한 것 역시 좋았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여전히 돌봄과 사회적 관계를 상당히 개인적 차원에 의존하는 미국 사회의 단면을 볼 수 있기도 했다. 만약 저자가 비장애인 시절 안정적 경제력과 폭넓은 사회적 관계를 쌓을 수 없는 상황의 여성이었다면, 이 책은 기록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장애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서는 조금 덜 이야기하고 있는 점 역시 아쉽다. 그럼에도 나를 더 확장 시켜 주고 나와는 다른 장애인들을 조금 더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책이다.
‘장애는 불행이 아니고 불편한 것이다’ - 이재헌
내가 장애인활동지원사를 시작하며 가슴 깊히 새기고 있는 말이다. 누구나 태어나면서 혹은 살면서 예상하지 못한 장애를 갖게 될 수 있다. 그것은 개인의 불행이 아닌 일상을 살아가며 불편한 점들을 사회가 책임져야 할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이 책을 읽으며 저자와 같은 사고로 장애를 직면한다면 ‘나는 불행이 아니고 불편한 것이다.’라고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상상해 봤다. 그 현실에서 그럴 용기가 남아있을지 자신이 없다.
이 책은 큰 사고 이후 심각한 지체 장애를 갖게 된 저자 크리스티나 크로스비가 장애인으로 살아왔던 과정의 서사다. 묘사할 수 없는 극심한 신체적 고통, 일상의 붕괴, 연인과의 관계 변화, 노동의 한계, 의식주를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상황, 돌봄 노동자와의 관계, 신체 기능의 쇠락,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심리적인 변화들. 저자는 이상의 사건과 상황들을 때로는 매우 섬세하게 때로는 담대하게 서술한다. 그 강인한 자아에 숙연해지고 전해지는 슬픔에 마음이 아팠다.
많은 장애인이 살아가는 현실을 떠올린다. 사회가 무수히 많은 개인의 불편을 방치한다면 그 사회는 무슨 존재 의미가 있냐고 외쳐본다. 서로에 대한 돌봄이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고 의미이고 기억일 것이다. 나를 돌봐주던 이들과 내가 돌보았던 이들에게 고맙고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다.
‘카테고리 예외’를 표현하기 - 김성구
이 책은 중도장애를 입은 크리스티나 크로스비의 서사, 신체 건강하고 유능한 한 여성으로서의 모습을 끊임없이 회상하는 저자의 모습이 담겨 있다. 크리스티나 크로스비 (이하 티나)는 젠더라는 선택지 내에서 결코 기성세대가 만든 여성성의 젠더를 지양하고 자신만의 젠더를 사유하는 서사를 보여준다.
책 전반, 중도장애를 입은 사고 이후의 60여 페이지까지 읽기가 매우 어려운 이유는 중도장애라는 타이틀 이전에 생소한 것들이 많았다 척수 손상으로 인한 중도장애라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들로 귀결된다. 얼마나 아플까? 얼마나 힘들까?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티나는 ‘카테고리 예외’표현으로 대체했다. 카테고리 예외는 어떠한 표현들로도 비견할 수 없다고 단정 짓는 것은 아닐까? 물론 카테고리 예외의 표현은 존과 제프를 떠나보낼 때의 비통함을 표현했지만 말이다.
티나는 사랑이 많고 자신만의 젠더를 사유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여성성이 느껴지는 어휘들과 필체를 느낄 수 있었다. 시가 인용되는 부분과 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존과 다발성경화증으로 명을 달리한 오빠를 회상하며 정말 사랑이 많은 여성이다. 자넷과의 사랑은 카테고리 예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자넷이 중도장애를 입었다 해도 티나가 자넷처럼 할 수 있다고는 했으나, 티나는 상반되게 자넷에게 감사와 사랑을 사유해야 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앞에 말했듯이 티나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며 그 사랑이 많음으로 사람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도나는 치료과정에서의 티나에게 도움을 줬으며 퇴원을 하게 되는 처지에서도 티나를 지지해줄 수 있는 사람으로 남았다. 미국 사회의 돌봄 노동의 일면을 조금 보여주기도 하는 이 책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인종 간의 차별이 존재하며 노동의 범주 또한 그 경계가 정해져 있다는 것이 매우 화가 나면서도 아쉬운 일면이다.
이 후기를 쓰는 나 또한 중도장애인이다. 하지만 몸으로 느껴지는 중도장애와 뇌로 체감하는 중도장애의 간극은 어쩌면 다른 차원의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쉬운 점은 장애인이라는 이름이 아닌 장애로 그 서사를 마쳤다는 점이다.
척수 손상이라는 상상할 수 없는 몸의 장애, 내 사지가 멀쩡하다는 것에 대한 감사와 주변 사람들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일으키게 한 책 ‘와해된, 몸’에 감사하며 서평을 마친다.
삶의 기저에서 요동치는 무의식에 대한 고백 – 나순결
그렇구나, 위임장이 필요허구나. 가족관계증명서에 기재되지 않은 자가 병원으 의료행위를 반대 혹은 찬성허려면 위임장이...
10장 <폭력과 성스러움> 은 솔직험으루 14장 <나는 당신의 육체적 연인이야>는 메를로 퐁티으 '몸에 대헌 논고'를 극명허게 짧지만 뇌주름에 척척 달라붙게 맹근 날카로움으루 읽는 내내 내를 흥분시켰구.
메를로 퐁티가 이랬거나 저랬거나 몸은 정신이든 마음이든 담구선 이동시키거나 증폭시키거나 허는 존재다. 혀서 동물-인간은 어쩔 수 없는 몸존재다. 작가는 두손으루 어렵게 찻잔을 들어올리구 한손으루 어렵게 어렵게 책장을 넘기는 존재. 기나긴 재활을 통혀서 이 두 행위를 하게 되자 작가는 요리 말혔다. 순간 눈물 찔끔.
"내는 내 삶을 되찾았다."
엄청난 문장을 발견혀냈다. 142쪽.
"가족과 함께하는 삶의 기저에서 요동치는 무의식은 이성이 미치는 범위를 훌쩍 넘어선다."
조금두 아니구 훌쩍. '훌쩍'은 사고범위를 무시루 뛰어넘으며 왕왕 무화시킨다. 30억을 오리무중으루 맹근 어머니나 만 91세에 35%상속 받은 아버지나 아파트 판돈을 상속세 갚는데 몬내놓겄다는 형이나 이해허거나 말거나 헐 필요가 없다. 이해가 필요헌 부분은 '삶의 기저에서 요동치는 무의식'이 분명 존재허구 끝간데 없이 작동 중이라는 것뿐. 내가 타존재에 대혀서두, 타존재가 내에 대혀서두. 그때그때 적당히 타 넘으면 그뿐.
“나 내 삶을 되찾았어.” – 이은규
사적이든 공적이든 모든 면에서 행복했던 소위 잘나가던 크리스티나 크로스비. 2003년 10월 1일, 크리스티나는 자전거 앞바퀴 살에 나뭇가지가 걸려 노면에 처박혔다. 얼굴이 작살났고 5번과 6번 경추가 부숴져버렸으며 척수 손상으로 인해 전신의 근육도 쓸 수 없어졌으며 방광과 장을 조절하는 능력을 상실했다. 그녀는 ‘와해된, 몸’이 되어버렸다.
“지나치게 자주 사적 공간에 갇혀있는 우리는, 편리하게도 보이지 않는 존재이다.장애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건축 법규와 교육 정책, 작동되지 않는 지하철 엘리베이터와 도착하지 않는 학교 버스에 의해, 그리고 모든 소외, 착취, 비하 행위, "장애가 있는 자들the disabled"의 완전한 접근과 평등을 부정하는 적극적 배제에 의해. 내가 지금 이 글에서 쓰고 있는 것처럼 난치성 통증 혹은 "능력 있는 몸 the able-bodiednes"을 상실한 비애에 집중하는 것은 장애를 “기형의" 몸과 "비정상적" 마음으로 되돌릴 병리학적 서사의 장단에 놀아나는 것과 같다고 여겨질 수 있다.(20면)
와해 되기 전 몸과 와해 된 이후의 몸으로부터 겪는 인식론적 성찰부터 가족과 연인 그리고 동료와의 관계와 돌봄, 그 모든 것이 자신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자존감은 자신에 대한 타인의 존중에 기대고 있다는 인간의 상호의존성에 대하여 말이다.
“내 상황 때문에, 나는 모든 사람이 몸이(있)다라는 현실을 곰곰이 생각하게 됐다. 당신의 몸은 당신과 다른 타인을 만질 수 있는 거리에서 인식하는 과정을 통해 드러나기에 자아는 그 자체로 자립적이지 않다.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당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느끼는지 모두 오랜 시간에 걸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쌓인 것으로, 이를 통해 당신이라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 생각과 감정은 반복적으로 새겨져 체화된 자아라는 감각을 구성하는 강력한 회로를 만든다. 이것이 바로 나의 자존감이 나에 대한 당신의 존중에 기대고 있다는 인간의 상호의존성이다. 나는 더 온전하게 살 만한 삶을 필요로 하고 원한다. 척수 손상은 나를 초현실적인 신경학적 황무지로 내던져 버렸고, 나는 그 황무지를 밤낮으로 횡단한다. 이 글은 그 황무지의 지형을 설명해 보려는 노력이다. 나는 당신이 알았으면 한다. 그리고 나는, 나로서는 더 잘 이해하고 싶다. 강인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 엄청나게 의존하며 살아가는 매일매일의 모험에 대해. 그들의 도움이 없다면 내 삶은 말 그대로 살 수 없는 삶이리라.(36면)
장애로 인한 매우 사적이고 현실적이며 치명적인 고통을 고스란히 이야기하고 있다. 믿지 말라고. 완전한 회복은 없으며 이제껏 누려왔던 삶의 많은 부분이 와해될 것이라며.
“장애를 이야기하는 서사구조는 어려움을 겪는 주체가 고통스러운 시련을 거쳐 살 만한 순응으로 교훈을 얻는, 승리의 어조를 띄는 경우가 다반사다. 믿지 마라. 내 삶의 많은 부분은, 특히 내 배변 활동은, 도저히 믿기 힘들 정도니까.”(164면)
크리스티나 크로스비는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두렵다고 고백한다. 와해 된 몸으로 나이 드는 시련을 견디는 것이 두렵고, 계속되는 신경성 통증과 정서적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두렵고, 이 모든 두려움을 견디는 것이 힘들다 한다. 나 역시 크리스티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필멸하는 존재인 인간임을 누구나 안다. 그러나 삶을 살아내느라 무진 애를 쓰는 것은 사실 아무나 하지 못한다.
“나는 지독한 삶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싶어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오직 글쓰기를 통해서만 나는 내가 지금 이끌어 가는 삶, 지금 나의 몸에 도달할 수 있었다. 나는 문학적 비유에서 위안을 찾았다. 비유는 달리 접근하기 어렵거나 전달할 수 없는 것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디킨슨은 이렇게 썼다.
“크나큰 고통 이후, 의례적 감정이 온다 - 신경은 무덤처럼, 엄숙히 줄지어 앉아 - 지금은 납덩이의 시간-”
나는 고통이 언어 너머에 있는 것 같은 바로 저 납덩이의 시간에서 출발하여,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28면)
“나 내 삶을 되찾았어.”
반복되는 재활 훈련 끝에 손끝에 힘이 생겨 (겨우)책장을 넘겼을 뿐인데 크리스티나는 말했다.
'숨 소모임 일정 안내 > 남성페미니스트 모임 '펠프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떠오르는 숨 - 알렉시스 폴린 검스 (1) | 2024.11.25 |
---|---|
힘이 없는 힘이어야 채식주의자를 가득 껴안을 수 있겠다. (1) | 2024.11.24 |
펠프미 10월 - 떠오르는 숨(알렉시스 폴린 검스 지음) (0) | 2024.09.23 |
잠든 척하는 사람들이 깨어나 추는 춤판이 지구행성 곳곳에서 벌어지기를 (1) | 2024.09.19 |
펠프미 9월 - 기후위기 시대에 춤을 추어라(이송희일 지음) (0) | 2024.08.1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