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

<제77호> 그 아이의 시간_잔디(允)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19. 10. 15.

수첩에 일기도 없고, 낙서도 없고,

마음 깊이 담은, 문자도 없이 구월을, 보낸다.

나의 구월은 익숙함을 떠나보내면서

시작되었다.

 

밤사이 비가 많이 내린 다음 날,

팔월의 마지막 날 오후,

점심 먹기 전, 받은 전화...

 

오전에 아이가 혼자 집을 나왔다가 흙탕물에 떠내려갔고, 많은 사람들이 마을을 따라 흐르는 소하천을 수색하다

조금 전에 아이의 몸을 찾았다고...

아이의 차가운 몸 앞에서,

 

잘잘못을 서로 따지며 아이의 할머니와

아이의 엄마는 큰 목소리를 내고 있고,

아이의 아버지는 꺼이꺼이 우는 모습을

누군가 전해왔다는 내용의 전화...

 

믿을 수가 없어서, 우선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선생님도 나도, 아이의 눈을 마주보며 아이와 더 이상 놀이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서로 울먹이며, 아이가 왜 유치원에 오지 않았을까요?, 아무리 잠시라도 왜 문을 잠그지 않고 어른들이 고추건조장에 가셨을까요? 아이가 유치원에 오늘 등교했다면...

 

온통 현실을 바꾸려는 말들을 슬피 나누다 서로 전화를 끊었다.

여섯 살 몸으로, 다리를 휘적휘적거리며 걸으며, 가느다란 것에는 무엇이나 웃으며 다가가고, 공원에서 토끼풀밭을 자유롭게 활보하고, 작은 조각 장난감을 과감히 입에 넣고, 매운 김치 한 조각을 호호 하며 삼키고, 고기반찬을 오물오물 야무지게 씹어 먹고, 굵은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다가는 잠시라도 딴 곳에 눈길 주는 사이, 우적우적 색연필을 씹어 먹어 색연필 조각을 닦아내려 애쓰던 나와, 싫어하던 그 아이. 신나는 리듬의 음악을 틀어놓고, 리본 춤을 빙글빙글 돌며 함께 추던

그아이.

 

한 발짝 한 발짝 세상을 배우던, 아니 세상을 배우기를 권유받던 아이가, 이제, 여기에, 없다. 내가 볼 수가 없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쉬운 것이 떠올랐다.

 

싫어하는 가느다란 김치 조각을 밥 속에 넣어 먹인 것이 미안했고, 계단을 오르내리기 연습하는 중에, 계단을 오르다가 갑자기 휙 돌아 가슴이 철렁하여, 싫다는 손 꼬옥 잡고 연습하던 것이 미안했고, 넓은 곳에서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것 좋아하는 데 공원에 두 번만 간 것이 미안했고, 달콤한 아이스크림 한 번 못 사 준 것도 미안했다.

우리 집 막내가 키가 커서 못 입게 된 옷 중에서 깨끗한 옷을 물려 입혔는데,

예쁜 새 옷 한 가지 못 사준 것도 미안했고, 그 좋아하는 물장난 커다란 다라이에 물 받아놓고 맘껏 물놀이 한 번 함께 하지 못한 것도 미안했다.

 

그 무엇보다 아빠 소리 한 번 듣지 못하고 아이를 떠나보내야하는 그 아이의 아버지께 죄송했다.

얼마나 듣고 싶으셨을까... 아빠...

 

아이를 만나는 이년동안 매주 수요일마다 그는 조용한 미소를 지으며, 그 아이 옆에 계셨다. 아이가 컨디션이 안 좋아 큰소리로 울며 나를 꼬집을 때에 웃으며 서 계셨고, 아이의 발달을 위해 가정에서 소변 훈련은 이렇게 노력해 주세요. 어린이집 가려면, 밤에 몇 시에는 재워주시고, 아침에는 조금이라도 밥을 먹여서 등원시키셔야 컨디션 좋아요. 다섯 살인데 우윳병은 이제 그만 사용하게 저렇게 해 주세요. 밥을 먹어야 말도 잘 하게 된다고 생각한다며 내가 장황하게 설명을 할 때에도 미소 짓고 계셨으며, 오이 따다가 허겁지겁 아이를 데리고 와서 수업 시간에 늦었을 때에도, 시커먼 농사꾼의 손으로, 별다른 설명 없이 조용히 웃고 계셨다. 그렇게 별 말씀 없으시던 그가 우리 애기 사람 만들겠다고... 애쓴 것 안다고... 선생님 고맙다고... 우리 애기가 갔다고... 하시며 서둘러 전화를 끊으신다. 별다른 장례 절차 없이 아이를 화장하고 보낸다고 하셔서, 통화만 두 서너 번 했다. 무슨 말을 건넬 수 있을까 망설이고 또 망설이다 전화해서는, 용기내어 내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고작, 아버님 식사 잘 하고 계시지요?...

손자를 애지중지 키우시던 할머니와의 짧은 통화... 할머니 몸 좀 어떠셔요?...

할머니의 말씀 소리. 괜찮아요. 산 사람은 살아야지....

 

수업 스케줄 표에서 아이 이름을 지울 수도 없고, 들여다 볼 수도 없는 마음 아픈 시간이 지나간다. 흙탕물만 보아도 가슴이 막히는 먹먹함이 나를 관통한다. 누군가 이야기 속에서 아이 이름을 불러도 눈물이 후두둑 흐르는 시간이 흘러간다. 아이들이 만드는 웃는 소리를 나만 듣는 것이, 그 아이의 아버지께, 죄스러운 순간이 나를 지나간다. 나는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책도 읽는다. 그러다 문득 아이를 생각하고, 치료실에서 아이가 좋아라 만지던, 빨던 장난감을 보면 어느 순간에는 아이의 웃던 눈동자와 동그란 얼굴이 그립고, 아이가 쏟을까 걱정되어, 아이의 수업 시간 전에 어떤 장난감은, 치우던 나의 차가운 손과 마음을 미워한다. 어느 순간에는 아이를 기억하지 않고 며칠이 흐른 것이 미안하고, 아이가 머무르던 공간에서 헛헛한 마음으로 아이를 그리워할 그 아이의 엄마와 아버지와, 할머니의 허전함을 나 혼자 조용히, 공감한다. 그럴 때에는 그분들이 머무르고 계시는 곳으로, 내 마음의 빛을 보낸다.

 

그리고 가끔 생각한다. 아이는, 이제, 자유로울까. 내가 알아듣지 못하던 그아이의 언어에서... 그아이의 울음에서... 그리고 아이가 알아듣지 못한다고 생각되던, 이 현실의 수많은 소리와 요구들에서...

그리고 가끔, 나의 사랑하는 동료가 보내준 이 문자에 위로 받는다.

 

아프지도, 다름에 기준 따위 없는, 어떠한 존재로.. 그 아이 그 자체일 저 곳에서 편안하기를...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렇게 기억되기를요...”

 

지금은 그 아이와의 기억을 추억하고, 그러다 슬퍼지면 맘껏 슬퍼하고... 그리고 지금 나를 찾는 아이들에게 깊이, 마음을 기울이는 시간... 지금은 그런 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