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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

<제47호> 봄맞이_잔디(允)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20. 6. 16.

 

1

친정어머니와 오손도손 , 첫돌 맞은 아기를 안고, 대화하는 친구를 보며 생각했다. 내 어머니를 몇 번이나 몇 날이나 더 만나게 될 수 있을까?......

2

자그마한 키에 자그마한 가방을 들고, 자그마한 지팡이를 짚고, 그 가방 속에 꽃씨며 집에 있는 꽃모종, 울타리콩 씨, 꽃양귀비 씨앗을 나누어 주려고 애쓰시던 할머니가 계셨다. 당신이 드시던, 집에 모아둔 약봉지와 신문지를 적당한 크기로 자른 종이까지 준비해 오셔서 정성스럽게 나누어 주시던 한글 배움터 어머니... 그분께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배움터의 한 어머니께 전해 들었다.

며칠 전 당신 외출 길에 행렬이 길어 물으니 자세히 이야기해 주더라. 세 번째 담석제거수술을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하고, 내려와 청주 딸네 집에서 머물다 갑자기 몸이 안 좋아져서 청주 어느 병원에 입원했다가 며칠 못 견디고 조용히 돌아가셨다고... 다시 오늘 아침 보니, 자손들이 아침 일찍부터 새로 만든 산소에 오더라. 오늘이 그이의 삼우제날이라더라, 첫 성묘날...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나는, 이제 스러져간, 나와 함께 웃고, 김 오른 찐빵을 함께 나누던, 그 자그마한 몸을, 따뜻한 영혼을 한 번 더 뵐 수 없구나, 겨울동안 전화 한 번 드리지 못한 것이 후회로, 이제 손 잡아드리며 건강해지시라고 가시만한 침 하나 꽂아 드리지 못하는 것이 허망함으로, 그리고, 가슴 저 아래에서는 알 수 없는 슬픔이, 느껴졌다.

실은 늙으신 우리 어머님들을 십 년 넘게 만나는 나는, 이런 헤어짐의 날을 생각하기도 했었다. 지난 번 가을 끝자락에 오 년 정도 함께 글공부하시던 어머니가 자손분들과 같이 살려고, 강원도로 이사 가시던 날도, 우리가 살아서 언제 또 만날 수 있겠는가하며 울먹이며 인사 나누시는 것을 들으며 눈물 또로록...... 우리를 만나게 하는 운명과 우리를 갈라놓는 죽음을 밀어낼 수는 없다. 그저 만남에 감사하고, 그 순간들을 기쁘게 이어갈 수밖에 다른 수는 나에게는, 없다. 그 만남 속에 우연히 만나게 되는 기쁨과 어쩔 수 없이 맞게 되는 슬픈 자욱이 뒤엉켜 가슴이 먹먹해 질지라도... 그분이 남기고 가신 꽃씨가 싹 틔우는 것을 보며 꽃을 피우는 것을 볼 수밖에... 변함없이 그대로인 것은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시린, 봄이다.

3

두발 자전거를 즐겨 타는, 아이가 이제는 줄을 넘는다. 넘고, 걸리고, 넘고, 넘고, 걸리고, 웃고,.. 지루한 움직임 속, 지리하게 반복되는 연습을 하며, 계속 웃는 아이를 본다. 별명이 스마일이라나? 스스로 선택한 억센 반복 속에서, 익숙한 움직임을 꿈꾸는 그 과정을 너는 기억할까? 아침 등교 준비를 하며 - 이를 닦으며 - 딴청을 하는 너에게 지청구를 하니 내 갈 길을 가고 있는데, 엄마는 왜 방해해?”라고 하는 너에게 아무 말 못하고, 그래 너는 너의 길을 가고 있구나, 지금 이 순간...이라고 마음속으로 말하는 나를 너는 알까? 무안한 가르침을 한 순간, 선물로 받아 안고 웃는 나를, 너는, 기억할까?

4

중학교에 입학한 아이가 찬 새벽, 자전거를 타고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좀 더 잠을 청하고, 여유 있게 아침을 먹고, 조금쯤 공기가 찬 기운을 벗었을 때 등교하기를, 두 번째 차를 타기를 권유하지만... 아이는 어두운 공기 속에 일어나, 누룽지 죽을 몇 숟가락 뜨고는 첫 차를 타려고 집을 나선다. 나를 통과해 나간 후 아이는 아이의 시간을 사는 것인데, 그것을 잊고 있었다. 내가 보여주는 것만을 보기를, 힘들지 않고 아파하지 않고 세상을 배우기를... 허나, 그런 삶은 없다. 돌아보면 아이는 내 손을 떠나 학교에 입학한 후, 학교에서 제 삶을 살다 귀가하고, 집에서는 웃다가 싸우다가 함께 무언가를 하다가 서로 상처를 주고받고 하면서도, 줄곧 자신의 삶을 스스로 그려왔다. 그이의 삶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냥, 오만스럽게 통제하고, 가르치려하고, 고치려하는 나의 수많은 말들, 몸짓들... 돌아보면 부끄러운...

내가 그렇게 내 어머니를 떠나왔듯, 이제 내게서 떠나가는 아이를 느끼며, 가끔 눈물나게 서글프지만, 아이의 떠남을 인내하는, 아이의 성장을 축복하는, 그런 지금.

온기에 기대지 않고 겨우내 자라난 마늘싹 앞에, 여린 양파의 가녀린 초록 줄기 앞에, 아기 손바닥만한 민들레 싹에게 고개 숙이는 그런, 봄밤.

어느새 피어난 산수유나무의 꽃이 노오란 꿈을 꿀 봄밤.

자면서도 키가 클, 자면서도 마음이 자랄 아이들의 그런, 봄밤.

한밤중 아이가 잠깨어 무섭지 않도록 켜놓는 낮은 등을 꺼놓아도 좋을, 달빛 밝은 봄·...

봄에 싹틔울 이야기 싹과의 만남을 기다리는, 설레이는, 그런 봄밤. 깨어있는 한 어미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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