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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

저마다 별을 품고

by 인권연대 숨 2023. 9. 25.
저마다 별을 품고

                                                                                                                                                   잔디

 

들판이 가을빛으로 흔들리고, 크고 작은 나팔꽃과 여뀌, 고마리, 쑥부쟁이, 익모초꽃이 바람 따라 피어나는 지금, 나의 부엌, 작은 창가에서는 백정화가 자라고 있다. 봄에, 한 달에 한 번 서는 마을장터에서 만 이천원을 미니선생님에게 주고 안고 왔다. 흰 꽃이 피어서 백정화라는 이름으로 불리운다고 하는데, 아직 꽃은 만나지는 못했다. 꽃말은 관심, 당신을 버리지 않겠어요, 라고 하는데, 두메별꽃이라는 이름도 갖고 있어서 꽃이 참으로 궁금하여 가끔 물을 흠뻑 부어주며 기다리고 있다. 꽃모양과 꽃향기가 궁금하다. 설레인다. 그 화분 옆에는 로즈마리가 자라고 있다. 로즈마리는 5월엔가 막내가 엄지손톱만한 로즈마리를 삽목하여 들고 왔는데 코코넛 껍질로 만든 화분 안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다. 막내는 그 아이를 들고 온 후로는 관심을 주지는 않아서 설거지하면서 말 걸고, 쌀 씻으면서 안녕이라고 인사하고, 가끔 스치기라도 하면 로즈마리에게서 퍼져 나온 향이 손등에 묻어 괜히 손등에 코를 대고 흡흡거린다. 또 그 향이 좋아서 물을 마시다가 로즈마리에게도 한 모금 부어주며 손등을 일부러 살짝 스치기도 한다. 긴 파마머리의 컬 모양으로 우아하게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기쁘다. 로즈마리의 꽃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 기억에 남는 꽃말은 그대의 존재로 나를 소생시킨다, 이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꽃말에 은근히 비추어 표현하는 존재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길을 걷다가 잠깐씩 쪼그리고 앉아 한참 무언가 바라보다 보면, 보인다. 살짝 꽃망울을 벌리고 피어나는 고마리의 분홍빛, 아직 활짝 피어나지 않은 별모양의 좀나팔꽃, 두 송이가 나란히 피어 하늘을 향해 기쁜 소식을 말하고 있는듯한 나팔꽃, 아침 이슬을 달고 있는 거미줄, 노란 왕관을 스스로 만들어 쓰고 우아하게 서 있는 백일홍, 한 송이 한 송이 꽃마다 별을 품고 있는 낮은 채송화... 우리 집 아이들이 지금보다 어렸을 때, 엄마 이것 좀 봐, 라고 하던 말을 이제 내가 아이들에게 한다. 혹은 터무니없는 그 순간을 사진 찍어서 오늘 길을 걷다가 담아온 풍경이라며 친구들에게 전송하곤 한다. 부질없이 찍는 노을, 이제 곧 기억 속에서 언제 찍었는지 지워지고야 말 꽃사진들이었지만 지금 내 휴대전화 갤러리에는 사람은 없고, 지우지 못한 꽃, 하늘, 노을, 구름, 무지개 그런 사진이 그득하다. 언제 날을 정해서 흘러간 풍경은 흘러간 대로 흘려보내야겠다. 언제 다 지우지?

 

이 가을날, 선생님들 연수에 갔다. 아주 오랜만에 외부로 출장을 나갔다. 열일곱 분의 선생님이 참여하신다고 하였다가 어떤 이유로 아홉 분 정도만 함께 활동하였다. 소그룹이라 선생님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더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ADHD 아동의 문제행동에 대한 대체 중재가 주제였지만, 2주 전에 교육계획안을 보내놓고도 나의 계획은 날마다 연수하는 날 오전까지도 바뀌어 갔다. 내가 만나고 있는 A 아동의 담임선생님과 먼저 전화통화로 만나서, A 아동과 교실에서 지낼 때, 어떤 행동이 나타나기 전 환경을 살피고 그 환경의 재구성과 일어난 후의 행동 중재를 의논하고 일주일을 지내보았다. 일주일이 지나고 선생님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왠지 모르게 서로 눈시울이 빨갛게 되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아이를 감당해내면서 선생님은 뭔가 변했는데 그 변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변했다고 표현하였다. 그 뭔가의 실마리는 이것이었다. 아이가 변했다기보다 어떤 면에서 선생님이 변해있었다는 것. 그리고, 아이가 일부러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 내면의 어쩔 수 없는 어떤 것이 그로 하여금 그렇게 하게 하는 것이라는 이해가 바탕이 된 것 같다고. 의논한 대로 해보니, 아이와 가까워진 것 같다고, 그래서 학교 구성원들이 다 같이 동일한 방법을 배워서 A 아동의 학교생활을 돕는 것이 어떠하겠냐고 제안해 주었고, 그 내용대로 교사 연수가 진행된 것이다.

 

연수를 준비하는 동안, 강의 때 한동안 들고 다녔던 두꺼운 스터디 카드를 발견하였다. 책꽂이에서 20년 정도 지난 강의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그 물건을 발견했을 때, 무언가를 버리지 않고 간직해두는 나에게 오랜만에 엄청 고마웠다. 다시 집을 옮길 처지여서 버릴 무언가를 찾고 때론 조금씩 정리하고는 있는데 잘되지 않아서 살림은 어수선해지고 있어서 자책하고 있었는데 고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보물을 만나, 나의 과거를 들여다보고 현재의 선생님들께 전해 드릴 이야기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그때의 내가 그때의 선생님들께 들려드렸던 이야기대로 지금 살고 있다는 것이 문득 고맙고 감동적이어서 혼자서도 A 아동의 담임선생님과 마주 앉아 뜨거워졌던 눈이 되었다. 그 마음으로 선생님들을 찾아갔고, 나의 아픈 부분을 내 소개로 꺼내놓았고, 노래도 한 두 곡 불러드렸고, 동그랗게 앉아 돌아가며 현재의 느낌을 나누었고, 아이들을 만날 때 나의 에너지에 대해, 아이들과 나누고 싶은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나누었고, 질문을 통해 서로의 고민도 나누었고, 그렇게 세 바퀴 돌자 헤어지는 시간이 되었고, 하루에 한 번은 애쓰는 나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그 고마움을 세포 하나하나 기억하도록 에너지를 충전하여 그 몸과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가면 어떨까요? 하는 문장으로 우리는 헤어졌다.

지금 내 눈앞에 살아계신 선생님들께 여기에 존재해 주셔서 고맙다고 말씀드렸다. 조금씩 나를 사랑하여서 계속 살아보자고도 말씀드렸다. 우리, ‘자연사하자라는 노래도 있지 않은가. 웃으면서 듣다가 슬퍼져 눈물이 나다가 다시, 마음을 털게 되는 그 노래.

 

A 아동의 담임선생님은 이번 주 동안에는 힘들게 지냈다고 전화를 주었다. 그래도 길이 영 안보이지는 않아서 다행이라고 하였다. 쪼그리고 앉아 들꽃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말 걸어보는 그 마음으로 나를 자세히 보아주고, 그런 내가 또 상대를 그렇게 보아주는, 그런 사랑을 함께 꿈꾸는 가을이었음 한다. 그런 사랑이, 수용이 흘러도 좋겠다고 허용하는 가을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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