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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

<제64호> 오늘은....._잔디(允)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19. 9. 26.

아이들이 우리 여섯 식구 이외에,

여섯 식구 울타리 바깥에 계신 분들의

안부를 묻거나 그리움을 표현할 때,

따스한 감정이 일어난다.

사람이, 사람이 그런 따뜻한 존재라는

사실이 위안이 되는, 순간.

 

내 생애 몇 번째

만난 큰 물이었을까?...

무서운 소리로 흐르는 그 물.

집을 삼키고,

사람을 긴장하게 하고,

된장항아리를 흘려보내고,

옥수수, 고추, 인삼, 양배추를 쓰러지게한,

심고 기른 농부의 마음을 녹인, 큰물...

물이 무섭기보다

물을, 자연을,

억지로 바꾸는 사람이,

무섭다.

물의 흐름을, 자연의 흐름을

바꾸는 인간의 억지가,

무섭다.

 

그 어느 순간에도 상대가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의심하지 않기를.

내 나름 내 생각을 건넬 수는 있으나

그것을 강요할 수는 없음을

나 잊지 않기를.

오늘 병규 아버님과 상담을 하다

그 생각에 더 매달리고 싶어졌다.

그가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알고 있으나

그의 최선이 내가 생각하는 최선과 맞닿아있지 않음을 개탄하며 그를 너무 몰아 구석으로 밀어내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그도 여섯 살 아들이 스스로 밥 먹기를, 기저귀 없이 생활하기를, 신생아처럼 우는 소리로 표현하지 않고 아빠, 나 안아줘 라고 이야기하기를 나보다 더 기다리고 계시리라. 아이가 태어난 후 여섯 해 동안 아빠라는 한 마디도 듣지 못했을 그가... 그가 기대어 있는 현실이 그에게 너무 무르지 않기를, 혹은 너무 단단하여 그를 지치게 하지는 않기를.

 

하염없는 비.

바다가 넘칠까

걱정하는 나무.

마늘을 까며

한알 한알 하얘질때마다

한숨 쉬는 산.(언제 다 하지?..)

다락방에서 저 혼자 고요한 강.

간밤 토악질로 힘들어하다

이제 편히 잠든 하늘.

빗소리에 잠깐 졸고 있는 풀.

이 일상이.

고마운 나.

 

 

사람이 너무나

모질지는 않은 존재라는 것이

가끔 위안이 된다.

동생을 함부로 대해 놓고는,

신경쓰여

뒤돌아보는 큰 아이의 눈빛.

방에 들어온 벌을,

나가기를 기다리며

문을 열어놓고 기다리다가

기다리다가

안나가니까

어쩔 수 없이 파리채로

잡으며 미안해라고 말하는

작은 아이의 음성.

집 잃은 친구에게 집을 지어주고는

언제든 상황이 되면 갚으라고

선뜻, 친구에게 마음과 물질을

그저, 내어주었다는 어떤 친구의 이야기.

누군가를 괘씸하게 혹은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생각하다가는

한참 후엔 다시 일으키는,

그 누군가에 대한 연민, 안타까움...

사연이 많은, 잘 모르는 아이에게

힘내라고 고기를 사주고는

당신은 고기 네 점 들고

집에 돌아와서는 배고프다고

따끈한 국수 한 그릇에

배 두드리는 그이.

그런 마음을 품고 사는 존재가

사람이라서,

그런,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 옆에

머무를 수 있어서 고마운,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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