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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

<제66호> 가을편지_잔디(允)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19. 9. 26.

그대에게(BGM은 아이유님의 밤편지...)

가을날, 마음 한 자락 띄웁니다.

엊그제 남편과 딸아이와 막내와 함께 잠시 외출하였어요. 형님네 고구마밭에서 아이들과 고구마 캐는 사람풍경을 보며, 저는 따가운 햇볕 아래 평평한 땅에 한가하게 앉아있었지요. 그러다가는 전봇대 폭 만큼의 그늘을 발견하고는, 그 그늘에 얼굴을 가리고 앉아 풍경을 보았지요. 한결 편안하더이다. 몸을 아주 조금 움직여 전봇대 길다란 그림자를 벗어나면 얼굴에 와닿는 햇살의 따가움, 그늘로 들어오면 여유로움, 따가움, 여유로움, 그놀이를 반복하며 해님과 숨바꼭질, 물드는 산 풍경, 도란거리는 그들의 목소리, 불어오는 바람... 더 바랄 것없는, 가을날, 한가함이었어요.

 

문득 그아이 생각이 났어요. 이십년이 다되어가는 기억이니 그아이는 스무살이 넘었겠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취직하여 일하던 일터를 떠나와 마음 추스릴 때쯤, 기다리던 곳에서 연락이 왔고, 가을부터 그곳으로 출근하여 어린 아이들을 만났지요. 그아이는 그때 다섯 살이었어요. 어머니와 같이 하루에 두 시간쯤 버스로 통학하는 아이었어요. 일주일에 닷새를 꼬박 어머니는 아이의 손을 꼬옥 잡고, 등교하였어요. 하교할 때는 다시 데리러 오셨지요. 지금 생각하면 그아이의 어머니는 아, 그일을 참 무던히도 해내셨구나 싶어요(그때는 그저 먼 곳에서 오가는 과정이 힘드시겠구나 여겼는데... 그가 오가던 길, 그길위에 뿌린 그마음들에 가슴이 아려오네요...). 아이와 2년반 동안 함께 하였지만, 아이는 그저 손짓으로 의사소통하였고, 그마저도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꼬집고, 할퀴고 하였으니... 제 이마엔 아직 그아이와의 식사시간에 생긴 손톱자국 상처가 남아있어요. 그아이가 졸업하던 겨울 저도, 그곳을 졸업하였어요. 때론 잊고 지내기도 하고, 이마에 난 상처를 보게 될 때 어찌 지낼까 잠시 생각이 스쳐가기도 했었지요. 그때보다 성장했기를 혼자 바래보기도 했지요. 올해 봄, 그아이의 아버지가 이숲에 손님으로 오셔서 두 번 뵈었어요. 검정봉지에 묵묵히 고사리를 꺾어 가고는 하셨는데... 사람들 소리가 그아이는 여전히 그때 그모습이며, 그간 그아이의 어머니는 스스로 목숨을 여러 번 지우려 하기도 하셨고, 어렵게 지금을 살고계신다고... 마음이 미어지더이다. 그아이의 아버지께는 아이의 안부를 묻는 것조차 눈물이 묻어날까싶어 아무 말씀도 못드렸어요.

아이의 손을 잡고 저에게 오시는 부모님들은 커다란 희망을 가지고 저에게 오시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마음에, 부드럽게 연고 발라드리고 밴드하나 붙여드리듯 그정성으로 힘들어 하실 때 이야기를 듣고, 그 힘든 걸음에 동행하는 것뿐이지요. 한시도 눈 뗄수 없는 아이를 기르며 생긴, 한시도 마음 뗄수 없게 된 아이를 기르는 시간 속에서 생겨난, 상처가 아물기를 기억이 치유되기를 마음 모으며, 함께 갑니다. 힘들고 지쳐 그들에게서 떨어져 나오고 싶은 날도 있지만, 그들을 두고 돌아설 수는 없는 저이기도 합니다.

제 몸을 통과해 세상으로 나간 아이를 기르는 동안,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들이 그저 꽃밭도 아니고, 그저 가시밭길도 아니겠지요. 다 놓아버리고 싶은 날에도 고요한 숨소리 내며 잠자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는, 그런 모진 생각 가졌던 순간을 미안해하며, 해가 뜨면 다시 따뜻한 한 때를 꿈꾸며 작은 손 맞잡고 하루를, 또 하루를 살아가겠지요. 아이가 건네주는 한 마디 말에 힘 얻고, 아이가 선물하는 위로의 손짓에 감동받아 그렇게... 소란한 시간이 가고 고요한 시간이 오겠지요. 선명한 보임이 지나가고, 희미함이 다가오더라도, 그 희미함에 기대어 걸어가기를... 그대 곁에 머무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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