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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살며 사랑하며

<104호> 가족이라는 말_이구원(회원)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21. 1. 6.

 

가족은 나에게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다. 그들에 대해 제대로 모를 뿐 아니라 냉정하게 말하자면 난 가족에 의해 버려졌고 그로 인해 가톨릭교회의 한 종교단체(선교회)에서 26년의 삶을 살아왔다. 물론 내가 살아왔던 공동체에서도 가족 같음을 강조했었고 어릴 때는 그 곳의 분들을 엄마, 아빠 등으로 부르기도 했었다. 하지만 사춘기를 거치고 어른이 되어가며 내가 살았던 공동체가 가족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머리가 커가며 늘어만 가는 불편함에 내 주변의 편하고 친한 사람들에게 가족 같은 공동체가 아니라 가조오옥 같은 공동체라며 뼈 있는 농담을 하곤 했었다. 뿐만아니라 자립 이후 동료 장애인 분들과 상담을 하며 가족이 장애인 당사자들의 가장 큰 억압의 주체가 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가끔은 가족이 없는 내 자신의 모습을 더 다행이라고 여길 때도 있었던 것 같다.

 

반면 든든한 가족의 지지 기반 아래 자기가 하고 싶은 활동을 하는 장애인 당사자들의 모습을 보기도 한다. 내가 최근에 좋아하는 정치인 중 한 명인 정의당의 장혜영 의원 역시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언니이며 동생을 포함한 여러 장애인들의 권리 보장을 위해 국회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가족, 특히 나와 같은 장애인의 가족에 대해 묘한 감정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그런데 학교에 장애인권 강의를 다니다 보면 간혹 아이들이 자신의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음을 알려 주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친한 친구와 함께 다가와 개인적으로 가볍게 그 말을 건넨 아이도 있었다. 또 올해 만났던 한 아이는 장애 인권-당사자의 삶과 장애인 앞에 놓인 장벽-에 대한 이야기를 듣던 중 친구들이 놀릴까봐 말을 못 했었는데 자기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서러운 울음과 함께 우리와 친구들에게 알려 주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마음이 정말 복잡해지곤 한다. 솔직하게 느껴지는 감정 중에서 우선은 당황스러움이 있다.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나에게 장애인의 가족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참 다가가기 어려운 문제이다. 하지만 울음과 함께 이야기를 전해 준 아이의 경우 그동안 받은 차별경험과 그로 인한 서러움의 깊이가 상당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뭔지 모를 아픔이 나의 가슴을 저릿하게 찌르는 것만 같았다. 울컥함이 올라오며 눈가가 잠깐 촉촉해지기도 했지만 당시의 상황에서는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학교에 교육을 하러 간 것도 있고, 오히려 섣부른 한마디가 그 아이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해보다 더 근본적으로 나의 마음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앞에서 난 장애인의 가족에 대해 불편함을 갖고 있다고 이야기했는데 더 구체적으로 나의 가족, 특히 그중에서도 아버지를 미워하는 마음이 존재한다. 여기에서 자세히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얼굴도 모르는 나의 아버지란 사람이 했던 행위들은 비겁하고 무책임한 것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장애에 대한 책임을 오로지 당사자와 그 가족에게만 돌리는, 더욱이 사회적 책임이 지금보다 전무했던 당시의 이 나라에서 그의 선택이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이해하고 있다. 그렇기에 어쩌면 가족을 미워하는 마음과 이해하려는 마음, 가슴 한켠에는 그리워하는 마음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아이들의 이야기가 어렵고 아프게 다가왔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여전히 사회적 장벽들이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나한테 그 이야기를 해 준 아이들이 모두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 역시도 멀지 않은 날에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편안한 마음으로 누군가와 나눌 수 있게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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