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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

<107호> 그의 꽃자리를 기억함. _ 잔디(允)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21. 3. 30.

 

진달래꽃 봉오리,

다시,

활짝 반짝이는,

지금,

한달 전에 돌아간,

그를 생각한다.

이숲에 피어있는 꽃이 없는 시절에도,

속절없이, 꽃자리를 남기고 떠난,

함께 앉아,

막걸리 잔 기울일 수 없는 거기로,

여행 떠난,

그가 남기고 간,

소리 없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아주 가끔 조우하던,

그를

자꾸,

생각한다.

 

이십년 전의 어느 날, 남편이 그와 만났고, 친환경농사를 짓는 마을로 가자하였다. 그곳으로 가서, 농사도 짓고, 마을 어른들과 마을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자고 하였다. 어쩌면, 그에게 기대어(그래도, 마음 나눈 사람이 마을에 산다는 것은, 아주 든든하기에)

그리고 우리는, 그 마을의 작은, 첫 집으로 깃들었다. 가끔 그의 귀틀집 거실에 앉아, 부부 네 명이 마주 보고 앉아, 막걸리와 함께 수다하였고, 그의 아이들이 커가는 것을 함께 보았고, 그의 어머니께서 나누어 주시는 음식을 함께 먹었다. 그는 마을에서 사람들과 함께 커다란 황톳집을 지었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먹고 살고자 하였다. 나중에 살림과 경영이 어려워지긴 하였지만, 그는 어떻게든 그 자리를 살리려고 노력했다고 나는, 기억한다.

어찌하다, 그는 마을에서 보다 마을 밖에서 더 많이 활동하게 되었고, 그의 아이들도 마을을 떠나 다른 지역의 학교에 다니게 되었고, 우리도 그 마을을 떠나 이 숲에 다시, 자그마한 둥지를 틀고, 지내게 되었다. 때론 그를 긴 시간 만나지 못하였고, 때론 자주 만나기도 하였으며, 때론 그는 못 만나고, 그의 아내만 만나기도 하였고, 때론 그의 아이가 우리 아이를 만나, 배움의 선택에 도움을 주는 상담을 하기도 하였다. 허나, 그 모든 만남에 그가, 여전히 함께 있었다라고 여겨지는 것은 왜인지......

이태 전 비가 많던 어느 한 달... 다시, 우리 넷이, 두 번 연거푸 만났다. 하루는 이 숲에서, 하루는 그의 아내의 집에서. 새벽 운전을 하는 그가, 운전을 하다가 힘들어 질 때, 개발한 주문을 외면, 다시 운전에 집중하게 된다는 주문을 개발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장황하게 이야기하고, 그 주문의 효과까지도 여러 가지를 웃으며, 이야기한 장면이 기억난다. 그의 이야기를 고개 끄덕이며 열심히 듣고, 나는 그에게 어흠교 교주님이라고 칭하고, 나만 어흠교의 일원이 되었다. “어흠~~~”은 여러 가지 만트라를 외며, 몸과 마음의 연관성을 연구하던 그가, 종착한 한 단어. 어흥하는 호랑이 소리와도 닮아 있고, 옴마니 반메홈의 어떤 글자와도 닮아 있어, 그 두 음절을 발음하면, 몸의 진동과 함께, 마음의 깨어남도 함께 불러온다고 설명하였다. 나도 한 동안 호흡하며, 기억날 때마다 어흠하며, 몸을 깨우기도 했었다. 또 하루는 여름비가 한참 내리던 날, 푸짐한 안주를 요리한 그가, 제안하는 사업 설명을 들었다.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우리가 지어낸 사업명은, 이름도 예쁜 우리밀 약초빵 이었다. 누구는 약초를 배우고, 누군가는 우리밀로 빵 만드는 것을 배우고...설왕설래하였다. 재미있는 사업 구상이었고, 아직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으니, 읏샤읏샤 하자 했었다. 그렇게 만나고 나서 시간이 다시, 흘러갔다.

그리고 나서는, 그의 어머니의 장례 미사를, 일 년 후에는 그의 장례 미사를 드렸다. 그의 전화번호로 전송된 그의 부음은 낯설었다. 그리고, 그의 갑작스런 침묵이, 그의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기를 나는, 바랐다. 두꺼운 안경 너머의 그의 커다란 눈을 나는 본 적이 없지만, 그가 가정을 보살피는 마음보다, 가정을 둘러싼 더 커다란 배경을 안전하게, 평화롭게 만드는 일에 마음과 몸을 쓰는 동안, 그의 아이들이, 그의 아내가 외롭고 힘들까 걱정하면서도, 나는 그의 자유롭고, 커다란 마음을 동경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가족과 그리고 내가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들. 그 경계의 어디쯤에서 왔다갔다하는 나는, 그처럼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려내는 사람이 되지 못해, 그가 그의 아이들과 나눌 사소한 이야깃 거리를 만들었으면 하고 바라면서도, 그가 평화의 동그라미를 계속 그려 나갔으면 하고 동시에 바랐나보다.

이제 한 달여 그를, 계속 떠올리며 그가 남기고 간 소리 없는 이야기에 대한 뚜렷한 줄거리도 아직 잡지 못했지만, 그래도 어렴풋이 다가온 문장은,

계속 꿈꾸어도 돼. 그것이 어떤 꿈이든. 네가 그릴 수 있는 한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려보렴. 네가 그리고 싶다면... ”이다.

 

그가 남긴 꽃자리가,

그가 만났던,

사람마다의 마음 속에,

기억 속에서 한들한들 다시,

피어난다.

내내 피고 지고,

피고 지고 하겠지 싶다.

기억이 살아 있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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