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식지/마음거울

<110호> 어공의 끝은 어디인가 _ 계희수(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활동가)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21. 6. 28.

어공. 어쩌다 공무원 말고, 어쩌다 공수처. 나랑은 전혀 관계없어 보이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오늘 고발장을 접수했다. (참고로 오늘은 622일이다.) 고발인은 충북스쿨미투지지모임 대표 계희수, 상대는 과거 청주지방검찰청 소속 검사와 청주지방법원 소속 판사들이다. 판검사를 처벌해달라고 고발장을 접수하다니? 무모한 일을 벌이는 것 같지만 공수처가 생겼기에 시도해 볼 수 있는 일이다. 물론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 지지모임이 검사와 재판부의 행태를 문제제기했다는 사실 자체가 내게는 요즘 유행하는 말마따나 가슴이 웅장해지는 일이었다.

 

오늘 A와 우리 지지모임은 충북여중 성폭력 가해교사 재판에서 피해자였던 A의 신상을 노출한 담당 검사와 판사에게 책임을 물었다. 성폭력 사건은 피고인 모두 유죄를 선고받았지만, 검사와 판사의 부주의로 A2차 가해의 표적이 되었다. 우리는 공수처와 국민권익위를 찾아 검사와 판사의 행위가 직무유기임을 확인해 달라고 요구했다. 또 성폭력 사건 재판 중 믿을 수 없는 수위의 2차 가해를 저지른 가해교사를 형사 고소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성폭력 사건이 전반전이었다면, 오늘부터 후반전에 접어든 셈이다. 후반전까지 완주해야 비로소 스쿨미투 운동이 완결되었노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 완결은 성폭력 피해자가 고발자가 된 후에도 일상의 흔들림 없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다.

 

A와 나는 정말이지 그간 너무나 지난한 길을 걸어왔다. 내가 이렇게 피로한데, A는 어떨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A는 충북여중 재학 당시 스쿨미투 운동을 주도해 전국에 교사의 성폭력 사실을 알렸던 사람이다. 모교를 욕보이는 건 누워서 침뱉기라는 일부 교사와 학생들의 우악스러운 공격에도 A는 총대를 맺다. A는 그런 사람이다. 맞다고 생각하면 누가 위협을 하든 그 길로 쭉 걸어가는 사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기꺼이 그 누군가가 되는 사람. A는 학교를 그만두고 수능 공부를 하는 와중에도 소송을 준비하고 기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학교에 남겨진 친구들을 위해서. 자기를 뒤따라올 수많은 A들을 위해서.

 

솔직히 한동안은 스쿨미투 운동이 지겨웠다. 똑같은 이야기를 앵무새마냥 반복했는데 바뀌는 건 별로 없었다. 가해교사들의 형량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잘 바뀌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게 운동이며, 운동판에서 같은 이야기를 수년씩 하는 대단한 사람들도 많다지만, 나는 그들과 달리 지구력이 좋지 않은 편이다. 이런저런 일과 겹쳐 도망가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그때마다 A의 존재는 내게 큰 산이었다. 옆 사람이 자기 존재를 걸고 태산처럼 버티고 있는데, 나 살자고 도망갈 만큼 얼굴이 두껍지는 못한 인간이니까. 지지모임 동지들에게 기대어 버티고 버티다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요즘은 스쿨미투 운동이 어느 때보다 재밌다. 가해자의 공격을 정신없이 막아내던 지난날은 가고, 이제 우리의 시간이다. 우리는 가해자들에게 똑똑히 알려줄 참이다. 당신들이 죄를 덮기 위해 했던 모든 일들이 성폭력만큼이나 무거운 죄라는 걸. 성폭력 피해사실을 용기 있게 말한 이를 손가락질 하거나 사소하게 다루는 게 얼마나 큰 죄인지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