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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210914 『망명과 자긍심: 교차하는 퀴어 장애 정치학 _ 일라이클레어 지음』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21. 9. 14.

 

 

"리 로드" - ‘너희에겐 우릴 부를 대명사조차 없잖아.’  


 
일라이 클레어의 망명과 자긍심을 읽은 지 만 하루가 지나고 있다. 그 하루는 밤에서 새벽으로 그리고 저녁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나는 삼시세끼를 했고 두 시간여의 산책을 했으며 밤잠과 낮잠을 잤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아들로 남편으로 아버지로 살아있다. 일요일이 지나 월요일이 되면 나는 인권연대 숨의 일꾼으로 그리고 누군가의 선배 후배 그리고 이런 관계 저런 관계성 속에서 형성된 익숙하거나 낯설은 어떤 존재로 여전히 살아갈 것이다.
 
자 이쯤에서 질문을 던지겠다. 익숙하거나 낯설은 어떤 존재로 살아가는 ‘나는 누구인가?’
“우리중 어떤 이들은 여성으로 존재할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고 다른 이들은 남성으로 존재할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아가고 있어. 그리고 또 다른 이들은 완전히 다른 무언가로 존재할 새로운 길을 내고 있어. 너희에겐 우릴 부를 대명사조차 없잖아.”(망명과 자긍심258쪽)
나는, 당신은 새로운 길을 내고 있는 존재인가?
 
일라이 클레어의 ‘망명과 자긍심’은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을 던지며 사유하라고 재촉을 한다. 세계의 사람들을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그리고 백인우월주의와 가부장제와 비장애중심주의와 이성애주의만으로 설명해 낼 수는 없다. 열거한 주류기득권의 세계관만으로 세계를 해석하고 사람을 해석할 수 있다는 오만이 세상을 이 지경으로 몰고 왔다. 그렇다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방법이 있기는 한걸까?
 
일라이 클레어는 이야기를 나누자고 한다. 우리 몸을 되찾고 세상을 바꾸는 일에 관한 무모하고 대담한 이야기를 나누자고. 치료되어야 하는 것은 비장애 중심주의지 우리의 몸이 아니라고. 그리고 또 힘주어 말한다. 자기만의 고립된 사유를 떠나 다중 쟁점적 사유를 통해 통합적인 분석과 실천을 계발하라고. ‘집’으로부터 도망쳐왔지만(망명) ‘집’을 갈망하는 일라이 클레어.
 
그(그녀 '또다른 존재') 가 말하는 집은 집으로서의 장소, 몸, 정체성, 공동체, 가족이다. 건초가 쌓인 목초지, 나무, 바위, 해변, 버려진 공터, 식탁, 뒷마당의 해바라기 등 우리를 품어주고 지탱해준 모든 것을 뜻한다. ‘집’이 진실한 다중 쟁점 정치를 가능하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일라이 클레어는 말한다. 망명의 ‘집’에서 자긍심의 ‘집’으로 전환!
 
“부서진 게 어떻게 치유되는지 이야기하기는 훨씬 어렵다. 한번 골절되었던 뼈가 지금은 다시 붙었어도, 그 뼈는 결코 부러진 적이 없는 뼈와는 다르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리고 그 둘 사이에 난 길을 따라가는 것도 훨씬 어려운 일이다. 나는 내 몸이 더 이상 텅 빈 폐가가 아니고, 내 욕망이 더 이상 갈라진 틈 사이로 쓸쓸히 빠져나가지 않는 지점까지는 왔다. 하지만 내 몸이 아직 내가 완전히 들어가 살 만한 집은 아닌 이 지점을 나는 어떻게 표시해야 할까? 내게 있어 도둑맞았던 몸에서 되찾은 몸으로 가는 길은, 내가 다이크로 커밍아웃한 데서 시작됐다.”
자긍심은 돈이나 권력, 아첨으로 절대 살 수 없다. 그것은 산산조각 부서진 몸에서, 버려지거나 도망쳐 왔던 그러나 되돌아 갈 수밖에 없는 단단한 ‘집’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며 숨결이다.  

일라이 클레어의 말을 변주하며 글을 마친다.


“우리가 도둑맞았던 몸에서 되찾은 몸으로 가는 길은, 우리가 페미니스트로 커밍아웃한데서 시작됐다.”

 

 

"재재" - 자긍심 있는 삶을 위하여 오줌을 갈기자!



 저자 일라이 클레어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따라가며 내 밑바닥에 묻어 뒀던 기억들이 올라왔다. 초등학생 시절, 하교 길에 종종 낯선 어른들이 나를 불러 세우고 선심쓰듯이 한 마디씩 던지곤 했다. 

 “아이고 다리를 많이 절구나. 내가 침 잘 놓는 한의원 아는데 거기 꼭 가보거라.”

그 사람들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때 기분은 선명하다. 부끄러움 보다는 마음이 아팠다. 학교도 가기 전의 어린 나를 치료하기 위해 대학병원을 전전하던 어머니. 그 때 받았던 물리치료가 너무 고통스러 울기만 했던 내 모습, 학교에 들어가서도 손가락을 잘 못움직이는 내가 음악시간에 리코더를 잘 못다뤄 제일 마지막까지 나머지 학습을 해야 했던 일들, 체육시간에 나만 특별 대우를 받았던 일들. 학교나 사회는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법 같은 것은 가르치지 않았다. 내 몸은 결함이 있는 존재란 사실을 끊임없이 주입했다. 일라이가 들었다면 고향 ‘포트 오포드’ 이야기로 착각할 지 모를 일이다. 

 난 이제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일라이가 말한 것처럼 내 몸에 대해 자긍심까지 갖지는 못했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성애자, 비장애인, 우리를 제외한 유색인이 자긍심을 갖고 살기에는 너무나 험난해 보인다. 그 깟 효력도 없는 차별금지법을 12년 넘게 입법도 못하는 대한민국에서 소수자로서 자긍심 있는 삶은 너무나 요원해보인다. 차별이 넘쳐나는 이 땅에서 혁명이 일어나도 이건 힘들어보인다. 

 일라이처럼 우리 각자의 퀴어다움을 가지고 우리의 집으로 돌아가는 날을 꿈꾼다. 결국 내 스스로 자긍심을 찾고 함께 외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싸구려 동정은 넣어두세요. 그 동정에 오줌이나 갈기고 싶네요.”

21.09.13 by 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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