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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

<제72호> 봄_잔디(允)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19. 10. 1.

가만가만 새싹을 보며

나의 길을 듣는다.

조용조용 새소리를 들으며

나의 살아있음을 본다.

뚜벅뚜벅 봄을 걸으며

내 숨을 들여다본다.

고요하다.

무탈하다.

그저 고맙다.

 

𐒀 아이와 다툰 뒤, 둘이 화해하는 대화 하러 마당에 나가 바라본 밤, 하늘. 북두칠성을 찾겠다는 아이와 불어오는 바람에서 봄을 맞는..., 이리저리 오가는 길 에서, 강 위에 길게 가지 늘어뜨린 버드나무. 그 나뭇가지에서 돋아난 연초록빛 새싹을 본다. ~ 다시, 봄이다.

 

𐒀 밭에 초록을 틔우려 애쓰는 이 시기.

경운기를 운전하는 남자. 그 뒤에 모자를 쓰고 탄 여자. 봄이면 어김없이 보게 되는 풍경. 왠지 가슴 아린...

 

𐒀 낮에 누군가에게 말한 한 마디가 영 마음에 걸려있어, 자려 누운 잠자리에서 뒤척이게 되는 밤. 상대의 불편함에 공감하기보다, 타자를 의심하거나, 부족한 배려에 대해 누군가의 탓을 표현하는 나의 단어, 나의 문장. 여전한 그 모습에, 깊은 아쉬움으로 마음 뒤척이는 밤. 다시 만나면, 나의 단어를 설명해야지, 내 진심을 다시, 표현해 보아야지, 하는 밤.

 

𐒀 나는 생각지 않고 있는데, 받은 문자.

아쉬움 담은 친구의 마음. 짧게 건넨 표현이 아쉬워 뒤척였을 친구의 마음. 이럴 때, 나는 사람이, 좋다. 사람이 사람이어서 좋다. 스스로 깨어나는 이팝나무꽃이나 이파리 같은, 사람의 마음. 그 마음을 지니고, 그것을 표현하는 사람. 그 사랑의 진정성이... 그 진정성을 지닌 존재가 사람이라는 것이...

 

𐒀 보아주는 이 없어도 열심히 피어나고, 아무도 가꾸지 않은 곳에서도 피어나, 내 마음을 두드리는,

꽃마리,

봄맞이,

꽃다지,

냉이꽃,

싸리꽃,

산벚나무꽃,

그리고 아직 이름을 모르는 나무,

그 나무에서 피어나는 초록이파리꽃.

하나 하나 눈길 주고, 이름 불러주고픈.

그 존재를 그저, 한 아름 안아주고픈.

 

𐒀 다래순을 따다가 남편에게 물었다. 다래순 나물을 좋아하냐고. 그는 겨울에 이걸 먹으면 흐뭇하다고 말했다. 더 묻지는 않았지만, 그 이파리 하나하나를 따서 나물 주머니에 담던 시간, 그 시간의 몰입, 바스락거리던 다람쥐의 움직임 소리, 나물을 삶아 널고 마르기를 기다리고, 마른 잎을 고이고이 담아두었다가 꺼내는 마음. 그 풍경과 시간, 마음을 겨울에 먹는 것이겠노라고. 애쓰지 않아도 자연이 주었던 고마움, 사람들은 왜 이것에 환장할까하고 나에게 던졌던 물음을, 그는, 겨울동안 봄을 먹고 따스함으로, 겨울을 지나왔겠구나, 라고 해석했다. 우린, 지나온 봄에도 함께 다래순을 따며 도란거렸구나를 기억했다.

 

𐒀 스물 몇 살 때 박태기꽃을 만났고, 아직 그의 곁에 초록이 틔지 않아, 회색의 시절. 저 혼자 돋보이는 박태기꽃이 노여워 쳐다보지 않았다. 허나, 이제 스무 해 지나 그를 보니, 돋보이는 듯한 선연한 빛깔을 내는 것은 그의 몫, 그와 주위의 어우러짐을 보는 것은 나의 몫...

이 숲에도 한 그루 심어볼까나...

 

𐒀 숨 생일에 한참 생각하다

저를 위해서 계속 쓰겠습니다

하고

여러 분들께 드린 그 한 문장이

계속 생각을 헤집어 마음이 불편하다.

내 흩어지는 마음들이 폐 끼칠까...

행여 그러더라도,

바람처럼 흘려주시기를...

바람은 지나가니까...

애써 보내려하지 않아도...

산 위 바람이,

잠시, 휴식이면 좋겠다 싶은...

그런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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