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 - 전현우
은규 일꾼
도시 쏘댕기기를 진행하면서 참여자들에게 매번 듣는 이야기가 있다. 차를 타고 다닐 때는 몰랐는데 걸어 보니 우리가 사는 도시가 차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도시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대중교통이 잘 발달한 것도 아니다. 차를 중심으로 도로는 설계되어 있으며 도시의 공간은 섬처럼 따로 멀리 분산되어 있다. 차가 없는 도시의 거주자들은 도로에 가장자리, 마치 샛길처럼 이어지고 끊어지는 인도를 따라 걷는다. 눈이라도 올라치면 도로는 제설작업으로 난리다. 출퇴근길 차량 정체 여부가 실시간으로 보도되고는 한다. 반면에 도로 이면의 주택가나, 보행로 등 사람이 다니는 길에 대한 제설작업은 시민정신 운운하며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나의 안전을 시민정신에만 맡긴다면 지방정부는 무엇 때문에 존재할까? 기껏 자동차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이야기가 눈이 내릴 때마다 빙판이 되어버리는 우리 동네 샛길로 빠져버렸다.
책 ‘납치된 도시에서 길 찾기’ 는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위기에 처한 이동’은 기후위기의 주요 원인이 자동차 지배에 있다고 한다. 자동차에서 나오는 온실가스가 기후위기의 주범이며 그로 인해 사람의 삶이 녹아내린다.
2부 ‘자동차에 납치된 도시에서’는 사람들의 걷기 공간은 자동차가 점령한 도로에 둘러싸여 흩어져 있으며 ‘납치된 걷기 공간’ 안에 이동의 위기를 유발한 핵심 원인이 있다고 한다. 이에 저자는 철도를 중심으로 ‘확장된 걷기 공간’으로 도시를 재편하는 것이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확장된 걷기 공간이란 출발지와 도착지 사이를 걸어서 움직일 수 있고, 이 걷기를 돕는 수단으로 공공교통망이 구축되어 차 없는 뚜벅이도 어렵지 않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15분 도시의 예가 이를 뒷받침하고 이는 기후위기로 직면한 이동의 위기에 대응하는 방법이다.
3부 ‘우리가 찾아갈 길’에서는 기후위기와 함께 이동의 위기에 처한 개인과 사회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는 자동차에 납치된 인류의 종말론으로 제목을 대체해도 무방하다. 진화의 과정에서 횡사할 처지에 처한 인류의 현 상황이 그저 애처로울 뿐이다. 누구도 대신해서 인류를 구할 수 없다. 굳이 희망 있게 글을 맺는다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도시쏘댕기기에 참여해 함께 걷던가, 저상버스 타고 쏘댕기기를 하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던가 기후행동을 촉구하는 집회에 참석하던가 아니면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를 읽던가!
자본주의와 장애 - 마타 러셀
구원 일꾼
장애에 대한 낙인과 분리, 차별은 자본주의로부터 발생하였다. 장애인권운동이 만들어낸 복지와 미국의 장애인법(우리나라의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많은 장애인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였다. 하지만 여러 판례들을 봤을 때 자본의 이익과 권리가 대립하는 노동의 문제 등에 있어서 이 법은 자본에 유리하게 해석되는 한계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감옥과 시설은 자본주의가 갖고 있는 착취와 배제를 정당화한다. 더 나아가 자본주의는 장애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우생학의 토대였으며 나치의 대량학살은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수호하기 위해 자행되었다. 이 우생학의 잔재는 현재도 남아있으며 진보운동 안에서 긍정적으로 검토되는 조력자살의 경우 우생학적, 경제적인 논리에 따라 우리들의 존재를 위협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그렇기에 근본적으로 경제질서, 사회체제를 전환해야만 장애에 대한 차별과 억압 또한 사라질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자본주의적 질서와 착취에 장애인이 포함되는 것을 넘어 판 자체를 바꾸기 위해, 불평등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
책을 읽으면서 기본적 권리로써 복지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만 최소한의 사회적 지원이 이루어지는 미국과 우리의 현실이 닮아 씁쓸했다. 경제가 왜 존재하는지 따져 물어야 하고 사람을 위해 경제는 움직여야 한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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