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숨 소모임 일정 안내/남성페미니스트 모임 '펠프미'

23.4.21 [허랜드]

by 인권연대 숨 2023. 4. 21.
샬럿 퍼킨스 길먼의 <허랜드>를 읽고 

이재헌

 우리가 이상적으로 지향해야할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개인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교육받으며 자신이 원하는 노동과 노동 이상의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사회. 그러면서 전체 사회는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을 최대한 보장하고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공동체이지 않을까. 작가 샬럿 퍼킨스 길먼이 상상한 여성들이 모여 만든 사회 허랜드가 그러했다. 모든 장면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의 이상향과 너무나 닮아 있는 공동체와 그 구성원들의 모습을 읽어가며 작가의 상상력에 빠져들었다. 어린 세대의 교육을 사회에서 제일 중요한 일로 묘사한 점과 과거 역사에서 성찰하고 발전하고자 하는 구성원들의 역사관과 심리학 대화는 페미니즘 사상을 넘어선 영감을 느꼈다.

 이 소설은 유쾌했다. 주인공들의 여성에 대한 말이나 행동에서 그들이 얼마나 무지하거나 여성혐오를 하는지 조금은 가볍게 감상할 수 있었다. 이 소설은 여성만이 살고 있는 사회를 상상하며 당시 사회나 남성 기득권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측면에서 영국 사회의 모순을 풍자했던 ‘걸리버여행기’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큰 차이점이 있다. 주인공인 남성들이 여성을 비하하던 모습에서 일부 인물들이 자신의 편견을 깨닫고 변화하는 모습에서 페미니스트인 내가 좀더 이야기에 나를 투영할 수 있던 점이다. 

 아쉬운 점을 적자면, 소설 설정의 한계이겠지만, 모든 구성원이 아리아인의 후손으로 묘사된 점. 주인공 이전의 다른 이방인과 교류가 없던 점. 그리고 허랜드는 다양성이 넘쳐나는 사회라고 묘사됐으나 예시가 적었다는 부분들이 기억에 남는다. 열린 결말로 끝난 것도 개운하지 못한 맛을 남겼다.

 이 책을 덮으며 초반의 유쾌함과 여성사회의 호기심은 작가에 대한 측은함과 존경으로 마무리 된다. 남성들의 여성비하 언행을 구체적이고 적나라게 묘사하는 대목들은 작가의 삶이 어떠했을까 떠올리게 한다. 이혼을 하고 페미니즘을 개척하며 혐오와 무시의 시간을 통해 쌓인 경험을 풍자로 털어낸 작가 샬럿에게 찬사를 보낸다. 자살한 그녀에게 우린 조금씩 당신의 상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하고 싶다. 

 

‘남성이 끝나자 전쟁도 끝났다.’ 허랜드 / 살럿 퍼킨스 길먼

이은규

 

태초에 전쟁이 있었다. 전쟁으로 인해 대부분의 남성이 죽었다. 남성들에 의해 지배 당하던 남성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그나마 남아 있던 지배자 남성들이 죽임을 당했다. 남성 노예들은 남성 지배자들에 의해 당했던 그대로 여성들을 지배했다. 이에 격분한 여성들이 단결하여 남성 노예들을 남김없이 죽였다. 전쟁은 끝났고 남성들도 끝났다. 때마침 격동적인 자연재해로 인해 그 나라는 외부와 단절되어 버렸다. 고립된(해방된) 지형에서 마침내 여성들만의 공동체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처음 한 여성의 처녀생식에 의해 다섯 자매가 태어났고 다섯자매는 또 각각 다섯자매를 낳고 그렇게 이천 년 동안 자손들이 번성했다. 그들은 모두 자매였고 모두의 어머니였으며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들이었다. 그들 사이에 흐르는 것은 깊은 모성애와 자매애에 기반한 사랑이고 그들 스스로도 모성애와 자매애를 신앙으로 여겼으며 특별히 아이들에 대한 사랑에는 경계없이 풍요로웠다. 그들 사이에는 두려움이나 질투와 시기심, 경쟁력이라는 감정들이 자랄 여지가 없었다. 대신에 공동체에 대한 헌신과 자연과 생명들과 공존하는 지혜를 실현하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그렇다고 쉼 없는 노동을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특별히 쉼과 노동을 분리하지 않았다. 노동해방과 인간해방을 성취한 나라였기에 가능했다. 특별히 종교라는 것은 없다. 그들의 신앙은 자매애와 모성애 였으니 엄숙한 유일신 따위가 비집고 들어설 수 없었다. 다만 특이한 것은 마을마다 작은 신전이 있고 누구나 언제든 그곳에 가 명상을 할 수 있다. 그곳에는 삶의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거처하고 있어 대화를 청하는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는 한다. 방문자가 원한다면 그들은 사려깊고 사랑 어린 조언을 건네며 위로와 격려를 한다.

 

이 책을 가만히 읽다 보면 고즈넉한 신전에 들어가 신과 함께 대화하는 느낌이 든다.

생생한 경전. 소설 허랜드는 나에게 그랬다. 스스로를 성찰하고 반추하게 하는 힘이 있어 곤고한 마음에 단비를 내려주었다. 낮 꿈처럼 허무맹랑한 소설이라 치부하면 달리 할 말이 없다. 태초에 꿈이 있었고 꿈은 매우 더디고 느리게 현실이 되거나 여전히 꿈에 갇혀 있지만 꿈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살아 갈 힘이 생기게 마련이다.

무척이나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는 허랜드. ‘남성이 끝나자 전쟁도 끝났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