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숨 소모임 일정 안내/남성페미니스트 모임 '펠프미'

전쟁 같은 맛 - 그레이스 M 조

by 인권연대 숨 2023. 9. 24.

남성페미니스트 모임 펠프 미’ 9월의 책

<전쟁 같은 맛 - 그레이스 M. >

 

“엄마가 보고 싶어 졌다”

                                                                                                                                       이재헌

 

오랜만에 엄마가 반찬을 한 상자 보내주셨다. 작은 아이스박스 안에는 10여 종에 가까운 반찬과 과일, 참기름이 꽉꽉 눌린 채 담겨져 있었다. “전쟁 같은 맛을 읽고 엄마라 불리는 사람들의 요리를 하고 포장을 하는 마음을 헤아려 봤다. 누군가에게는 가족들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마음, 학교에 가져갈 아이 도시락을 싸던 누군가에게는 내가 자식을 얼마나 관심 갖고 정성껏 돌보는 지 드러내는 마음, 타국에서 자녀들에게 모국 요리를 해주던 누군가에게는 정체성을 기억하고 아픔을 달래주는 마음을 담았을 것이다.

 

그레이스 조의 엄마는 사회적 약자였지만 약한 사람은 아니었다. 가족을 위해 타국 들판과 산에서 채집을 하고 끔찍한 일터에서 새벽마다 일을 하며 들풀처럼 그 자리에서 버텨내고 시들어 갔다. 저자는 그렇게 강인한 엄마가 갑자기 조현병이 생기고 아파야 했는지 이해하기 위해 그녀의 삶을 추적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전쟁피해자, 기지촌 여성, 이민 여성, 그리고 조현병 환자 여성의 일생 전체를 좀 더 다각적이고 사회적 맥락에서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국가나 사회라는 울타리에서 희생됐던 개개인의 이야기가 다시 발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하게 된다. 누군가는 지난 백 년의 역사를 통해 배운 것이 단지 이데올로기적인 추종뿐일 수도 있겠지만 전쟁 같은 맛을 통해 좀 더 인간적이고 민주적이며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개인들이 늘어나길 희망해 본다.

 

이 책을 덮고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저자가 엄마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던 마음이 내게도 묻어버렸나 보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나를 먹여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이은규

 

전쟁 같은 맛은 회고록이다. 어머니의 삶에 대한 딸의 촘촘한 기록인 동시에 인간에 대한 섬세한 연대기다. 혈육으로서 한계를 뛰어넘는 보편성을 획득하는 까닭은 바로 인간에 대한 섬세한 연대기이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그리고 한국전쟁을 겪은 후에 미군 기지촌 생활과 전쟁 신부로서 미국이민과 조현병을 경험한 어머니의 삶을 회고하는데 자신의 학문적 경험과 이론을 투사하고 있는 이 책은 동시에 필자 자신의 해방을 위한 여정의 성격도 띠고 있다. 어머니의 삶을 반추하며 자기 삶의 여정 또한 매우 솔직하고 꾸밈없이 털어놓고 있다. 어머니의 유산을 통해 딸은 이렇게 성장하는 중이라는 듯이 말이다.

양공주였던 어머니를 거부하지 않고 조현병에 걸린 어머니를 거절하지 않고 환대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딸은 혈육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어머니 군자의 삶을 수용한다. 조현병으로 인해쓸모없다여기며 자살 기도를 했던 어머니의 삶을 마침내 글쓰기를 통해 회복시키고 존엄성을 부여한다.

 

전쟁 같은 맛은 음식에 관한 내용이 제법 많이 나온다. 어머니가 미국이민을 와 건강하던 시절에 했던 음식과 어린 시절 전쟁 직후에 먹었던 음식이라 할 수 없었던 음식, 분유와 미군 기지촌에서 맛보았던 황홀한 치즈버거의 맛과 어머니와 할머니의 행복한 기억을 담은 생태찌개. 이 모든 음식은 기억과 관계되어 있다.

어머니는 분유를 전쟁 같은 맛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한국전쟁 후에 원조 식량으로 먹었던 분유를 어머니는 그렇게 표현했다. 굶주림 때문에 살기 위해 먹을 수밖에 없었던 음식이었고 먹기만 하면 설사를 하는 분유는 전쟁 같은 맛이었다고... 이와 달리 치즈버거는 젊고 활기찬 맛으로 어머니에게 기억되는 음식이다. 어머니가 필자의 아버지인 나이 많은 미국인 선원과 미군기지 레스토랑에서 주문해 먹었던 음식. 때때로 조현병에 걸린 어머니와 딸은 함께 있는 행복한 시기를 치즈버거 시즌이라 불렀다.

 

이 책 전쟁 같은 맛에는 한국전쟁 후 미군 기지촌 설립과 운영에 국가가 주도적으로 개입하였으며 기지촌 여성들을 성노예로 부당하게 취급해온 사실들을 알리고 있다. 그리고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다른 나라의 기지촌 여성들의 인터뷰도 함께 싣고 있다. 필리핀 성 노동자 활동가는 매춘부가 되지 않기로 할 권리를 확보하는 게 더 시급한 문제라고 말한다. 방임과 방치를 넘어 포주가 되는 국가에 대한 요구이다. 저자인 그레이스 M 조는 이 책을 쓰고나서 많은 사람에게 이런 글을 쓰다니 무척 용기 있다라는 말을 들었지만, 용기가 아니라 충동에서 나온 글쓰기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 책의 맨 앞장에 이렇게 글을 썼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나를 먹여준 모든 어머니께, 그리고 목소리를 내도 들어주는 사람 없었던 모든 이에게 책을 바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