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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경이랑세상읽기6

바닥과 소통 바닥과 소통 박현경(화가) ‘네가 보고 싶어서’의 ‘너’는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세상을 떠난 누군가일 수도 있으며,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비밀에 싸여 있는 어떤 존재일 수도 있습니다. ‘네가 보고 싶어서’라는 말은 한편으로는 연결과 소통에 대한 열망을 나타내는 말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세월호 참사나 10.29 참사 유가족들처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가족을 그리워하며 두 눈 부릅뜨고 눈물을 흘려야 하는 분들의 아픔을 표현한 말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층위에서 읽힐 수 있는 ‘네가 보고 싶어서’라는 주제로, 간절하게 ‘너’를 그리워하고 결연하게 행동하는 어떤 눈빛과 몸짓들을 담아내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저마다 자기만의 어떤 그리움, 어떤 사연을 품고 살아가는 관람객들과 소통하고자 합니다. 이렇.. 2023. 8. 25.
서로가 마치 얇은 유리잔인 것처럼 서로가 마치 얇은 유리잔인 것처럼 박현경(화가) “……그러게 선생님이 잘 다독여 주셨어야죠!……” A 학생 어머니의 날 선 말들이 빠르게 이어졌다. 대답할 겨를을 찾기 어려웠다. 통화가 끝난 뒤에도 계속 심장이 쿵덕거렸다. 금요일 퇴근 무렵이었다. 그 주말 내내 A네 어머니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렇게 주말을 보내고 아무 일 없었던 듯 웃으며 A를 마주하는 데 참 많은 에너지가 들었다. 내가 정신적으로 많이 취약하던 시기였다. 업무에 대한 압박감과 뿌리 깊은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고, 흉부에 원인 모를 통증이 계속되고 있었고, 아무 때나 눈물이 주룩 흐르곤 했고,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는 길엔 그냥 확 도로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버릴까 하는 충동마저 느.. 2023. 7. 25.
<126호> 내 친구를 소개합니다. 내 친구를 소개합니다 박현경(화가) * 이 글은 그림 ‘삶 26’을 감상하며 읽으셔야 더 재미있습니다. 아래의 QR코드를 스캔하시면 그림 ‘삶 26’을 컬러로 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축축한 어둠 속에서 만났다. 어둠이 그토록 깊고 질퍼덕하지 않았다면, 영영 서로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즈음엔 검고 굵은 빗방울이 하염없이 내렸다. 하늘은 어두웠고 주위는 붉었다. 하루하루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 그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씩. 그렇게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두렵고 또 두려웠다. 모든 일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잘 되고 있음을 알았지만, 불안은 도무지 날 놓아주지 않았다. 무력감이 깊은 늪처럼 내 두 발을 잡아끌었다. 아래로 아래로 무겁게 가라앉았다. 어디가 바닥인지 알 수 없었.. 2022. 10.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