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

<제87호> 우리는 계속 꿈꿀 수 있을까?_잔디(允)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19. 10. 24.

-가만히 내 속을 들여다보면,

두려움이 웅크리고 있다.

 

# 뜨겁고 무거운 하늘 아래 서서,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당신과 나의 북극곰을 생각한다. 빙하가 눈물처럼, 폭포처럼 녹아서 흘러내려 먹이를 찾아 헤엄치다 지쳐, 잠시 쉴, 얼음 조각이 없어 힘들어한다는 그 존재...

북극곰은 안녕할까?...

 

# 습하고 무더운 한낮, 무언가 놀이에 집중하며 땀이 송글송글 맺힌 아이를 보면서도 좀처럼 켜게 되지 않는 치료실 한 구석의 에어컨, 나조차 에어컨을 틀면, 지구는 어떻게 될까... 내 몸이 흩어지고 난 후 살아갈 아이들의 삶은 어찌 될 것인가...

 

# 싱그러운 여름 아침, 출근하는 길, 커다란 차에 혼자 타고 가는 것이 영 불편하지만,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기엔 시간은 빠듯하고, 길은 멀다. 꽉 닫혀있는 자동차 창문들... 어쩌다 열려 있는 차창을 보면 반갑다. 저 운전자도 화석연료를 조금이라도 아끼고 있구나... 알량하지만, 서늘한 위로...

 

# 아이가 제 나름대로 준비하여 진학한

학교 생활 중에 힘듦을 호소한다.

심장이 아프다고.

심장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몇 달 동안 괜찮을 거야 하다가, 아이의 심장이 괜찮은 지 검사를 받으러간다. 심장은 운동선수의 심장처럼 뛰고 있다는데... 심장이 왜 아프다고 하는 걸까? 더불어 사는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괜찮은 사람이 되는 공부를 하려 집을 떠난 아이는, 안 괜찮다. 아이를 다시, 학교로 보내고 생각한다. 밥은 잘 먹을까, 잠은 잘 잘까, 옆 친구에게 말을 걸기나 할까, 힘들고 어려워하는 스스로를 잘 돌보고 있을까?... 그렇게 시작된 생각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를 헤짚는다. 아이와 살아온 전 과정, 내 존재 자체를 흔들고 또 흔든다. 문득 정신 차린다. 아이가 힘들어 해도, 사소한 기쁨을 표현해도 함께 할 것이잖아... 아이가 어떤 모습이든 곁을 내어주고, 곁을 지킬 거잖아... 라고. 그 아이가 한 학기를 마치고, 자신이 정한 과제를 들고, 생활관 방을 옮기느라 미처 세탁하지 못해, 냄새나는 빨래를 한 보따리 들고, ‘방학을 살러 집에 왔다. 며칠 참다가 나는 그렇게 말할지도 모르지... “집에서도 학교에서, 생활관에서처럼 네가 할 수 있는 일을........”이라고.

 

# 장에 갈 마음이 있는 날, 면 가방에 주섬주섬 몇 개를 챙긴다. 마구 구겨놓았거나, 색종이 접듯 말끔히 접어놓은 검정 비닐 봉지. 새로 받아오고 싶지 않은 비닐들. 작은 것, 큰 것 챙겨가면 흙 묻은 것, 흙 묻지 않은 것... 등을 구분해서 받아올 수 있다. 동시에 집에 오면 곧 쓰레기가 되는 그 얇은 비닐을 더 이상 받아오지 않을 수 있다. 사실, 나는 장에서 예전처럼, 종소리 나면 냄비 들고 나가 두부를 사온다든지, 주전자 들고 나가 막걸리를 받아오면 좋겠다 싶다. 혹은 다 쓴 식초병 들고 가면, 벌크로 나누어주는 곳에서 줄 서서 빈 병에 받아오는 풍경을 상상을 한다. 이 지구가 정체를 알 수 없는 플라스틱에 의해 사라져버리지는 않을까 나라도 줄여야지, 쓰레기를 만들지 말아야지... 하며 욕실에서 나오면 불을 꺼라, 종이를 아껴 써야지, 만들기 할 때 테이프 아껴 써야지 잔소리를 한다. 나를 애쓴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아이의 한 마디. “엄마, 한 명이 그렇게 한다고 달라지지 않아...”나라도 해야지 하려하다, “이것은 네가 보고 있지만, 너와 나에 관한 이야기야.”라고 말하고 싶지만, 꿀꺽한다.

 

# 아이를 다그친다. 스스로의 일은, 스스로 할 것을. 어느 날엔, 혼자 하다 힘들어 눈치보다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고, 나의 말이 서운하여 아이가 서럽게 울 때, 꼬옥 끌어안고 내 속으로 이야기한다. ‘앞으로 아프지 말라고, 지금 너를 아프게 하고 있구나. 내 두려움으로...’ 내가 가진 내 두려움은 내 안의 이야기이지만, 그것이 밖으로 나갔을 때, 나와 상대의 이야기가 된다. 그것이 공감 받을 때는 두려움인 줄 알게 되지만, 허공에 떠도는 외로운 이야기가 될 때에는 덩어리가 마구 커져 나와 상대와 나에게 어두운 공간을 만든다. 자칫 폭력적이기도 한... 내 안을 들여다보고, 나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를 나와 의논하고 싶다.

 

# 남편님이 몇 해 전, 마당가에 심은 베롱나무.

지난해에는 딱딱한 줄기만 하나 세우고는 초록잎 하나 틔우지 않아, 오가며 살아있는가를 의심했던 그 나무. 올해엔 초록잎 하나 틔우기 시작하여 그 딱딱한 줄기에서 여러 가지가 자라더니, 잎을 내고, 꽃봉오리를 만들어, 한 송이 두 송이 피어날 때,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오늘은 가느다란 가지들에 여러 송이들이 피어나, 제법 무겁지 않을까하는 걱정 아닌 걱정을 하는... 바람에 흔들리는 꽃분홍빛 별빛들이 살아갈 힘을 건넨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