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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

우리 뒷집 할머니

by 인권연대 숨 2024. 2. 26.
우리 뒷집 할머니

잔디

 

설연휴 전날 트럭에 짐을 가득 싣고, 할머니 앞집으로 이사를 했다. 드디어 우리 뒷집 할머니의 앞집 사람이 된 것이다. 외딴집 생활을 십 년 넘게 한 나는 할머니는 어떤 마음으로 외딴집 생활을 해오셨을까 생각해 본다. 할머니 연세가 올해 95세이신데, 할머니가 스무살에 혼인을 하셔서 이곳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셨다고 가정할 때, 할머니는 칠십 년 이상 외딴집 생활을 하셨을 것이다. 외딴집은 마을에 혹은 마을 구성원이기도 하지만 외딴집만의 어떤 자유로움, 소속되지 않을 그런 포지션을 함께 소유(?)하고 있다. 그래서 소속감으로 충만하기도 하지만, 가끔의 외로움이 찾아온다. 물론 아이들이 어리고 숨 쉬는 것조차 잊어버릴 때에는 외로움이라는 것이 나를 모르는 체하지만, 가끔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숨을 고를 때, 갑자기 찾아온 손님처럼 외로움이 온다.

 

할머니는 칠남매를 기르시면서 농사도 짓고, 그걸 장에 내다 파시느라 또 손발이 다 닳으셨겠지만, 할머니에게도 가끔 외로움이 방문했을지... 할머니집을 바라보면서 외딴집이라는 키워드가 내 마음속에서는 우리집을 짓기 시작한 지난 해 봄부터 이미 자리 잡고 있어서, 긴 밭과 바로 마주 닿아있는 할머니집이 마냥 좋았고, 그 오래된 외딴집에는 누가 사실까 궁금했으며, 바로 몇 개월 전에 할아버지를 잃고, 할머니 혼자 살고 계신다고 남편에게 들을 때, 아직 만나지 않은 할머니가 벌써 좋았고, 예전에 마을에 살 때처럼 고소한 기름으로 구워낸 부추부침개를, 진달래 화전을 할머니랑 나누어 먹으면서 할머니 이야기를 들어야지, 하는 꿈에 부풀었다. 집 짓는 동안 집에 와서 일하다 가끔 할머니 마당에 가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을 때 좋았다. 할머니의 네 발이 무너지지 않기를, 나와 좀 더 머물 수 있기를 바랐다. 할머니도 어서 집을 짓고, 와서 같이 살자고 말씀해 주셔서 행복했다.

 

할머니랑 주로 나누는 얘기는 뭐 이런 걸 가져왔냐, 잠깐 앉았다 가라, 바깥양반이 재주가 좋아서 얼마나 좋으냐, 젊은 양반이 앞집으로 온다고 하니 얼마나 마음이 좋은지 모른다, 그냥 그런 이야기였는데, 듣다보면 마음이 괜히 좋고, 모든 이야기가 마음의 중심을 꼭 잡고 걸어온 사람이 나지막히 인생을 고백하는 이야기로 들려왔다. 또 듣다 보면 할머니의 은근한 힘, 세상이 어찌하더라도, 어찌 되더라도 뚝심있게 그저 사는 것밖에, 그 방법만 알아서 그렇게 살아온 사람의 마치 평화의 전사 무용담처럼 들리기도 하여서, 산자락 아래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이 주는 정기를 느낄 수 있었고, 나도 닮고 싶다는 마음이 저절로 들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갑자기 119를 타고 중환자실로 가셨다는 말을 들었고, 할머니는 한 달이 지나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집 짓는 현장에서 청소기를 돌리다가도 할머니 집 마당에 가서는 계시지 않아 집이 잠겨 있는 걸 알면서도, 괜히 계세요? 하며 문을 두드려 보기도 하고, 잠긴 자물쇠가 거짓인 것마냥 흔들어도 보고 빈 마당에서 컹컹 짓는 할머니의 개, 코기 하니한테 할머니 언제 오실 것 같아? 물어보다 돌아와서 다시 청소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할머니의 건강도 걱정이지만, 나는 뒷집 할머니랑 살고만 싶었다. 이기적인가?

 

그러다 할머니가 집에 돌아오셨는데 네 발으로도 집 밖에를 나오시지를 못한다. 병원에 누워 계신 동안 기력을 잃으셔서, 다리에 힘이 없고, 죽밖에 드시지를 못하고, 누워계신 할머니가 죽도 못하고 살아서 다시 왔어. 등으로 물을 빼냈어. 하시는데 잘 오셨어요 말씀드리면서도 할머니 몰래, 할머니의 막내 아들 아저씨 몰래, 조금 울었다. 할머니의 손을 잡고. 칠 남매는 일주일씩 돌아가면서 어떤 식으로든 할머니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어제는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은 세 발로 천천히 걸어 우리집까지 내려 오셔서 집안에 들어오셨다. 앉아서, 그동안 자녀분들이 돌아가면서 할머니를 보살피는 동안 겪으신 서운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고 가셨다. 이 공간에 할머니의 기운과 할머니의 목소리와 할머니의 이야기가 새겨졌다. 할머니의 시간이, 할머니의 칠 남매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갈지 나는 알 수 없지만, 나는 할머니가 기운을 더 차리셔서, 초록이 왕성한 봄날, 나와 마주 앉아 텃밭에서 부추를 잘라 가루 넣고, 휘휘 저어 고소한 들기름을 프라이팬에 붓고 부추전을 구워 할머니가 드실 수 있다면 달작지근한 막걸리 한 잔 함께 하며, 삶을 마주하고 살아온 할머니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 오랜 시간 삶을 살아낸 자의 아우라를 느끼고, 나도 할머니께 어떤 기운을 드리고 싶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 알 수 없으나 그러고 싶다.

 

양육자였던 사람과 지금 양육하고 있는 사람, 다시 보살핌을 받는 사람과 보살핌을 주는-주기만 하지는 않지만-사람 사이에 흐르는 보이지 않는 연대. 어떤 모습으로든 애쓰는 삶을 사는 자들의 교류를 꿈꾼다. 물 마시면서도 바라보고, 아침에 일어나서도 바라보고, 밤에 잠들기 전에도 마지막으로 바라보고, 감자를 썰다가도 문득 바라보는 할머니 집의 불빛. 할머니의 살아있음. 비 내리는 이 아침에도 바라본다. 할머니가 우리집에 오셨을 때, “어제 주방에 불을 켜놨대요”, 하시기에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구나 했다. 그 따스함.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아주 오래된 외딴 집과 이제 새로 솟아난, 언젠가 또 외딴 집이 될지도 모르는 이 집 사이에서...그 따스함이 오래도록 흐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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