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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

무해한

by 인권연대 숨 2023. 12. 26.
무해한

 

잔디

 

나는 무해한 존재이고 싶었다. 언 강 위에 떠 있는 배처럼 한겨울 움직이지 못하여도 한탄하거나 춥다고 말하지 않으며, 따뜻한 봄이 되어 물이 흐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흐르는 존재. 한탄은 사치이고, 춥다고 말하는 것은 소음이라 여겼다. 혹은 내 안의 온기로 바깥의 차가움을 충분히 견디어낼 수 있다고 자만했던 것 같기도 하다. 겨울날에도 해는 늘 떠오르고 등 뒤로 머리 위로 닿는 햇살의 온기로 충분하다고 스스로에게 외치며, 내가 생각한 대로 삶이 흐르지 않아도, 삶이 흘러도 그저 묵묵히 흘러 여기까지 왔다. 무해한 존재이고 싶다는 마음으로.

 

무해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최대한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일까? 최대한 에너지를 아껴 쓰고, 그 에너지 앞에 나를 떨게 하는 것일까? 최대한 물을 아껴 쓰고 어제보다 한 방울이라도 더 사용했다면 그것을 죄책감으로 떠안으며 한 방울 물을 얻기 위해 나보다 더 훨씬 노력해야 하는 사람들을 떠올려야 하는 것일까? 오늘 한잔의 커피를 받았다면 내일 한잔의 커피를 즉시 갚아야하는 것일까? 힘들어도 어려워도 그것을 내비치거나 말하지 않으며 묵묵히 살아가는 것일까? 이어지는 생각들을 살펴보다 나는 왜 무해한 존재가 되고 싶었을까? 그 생각의 시작을 떠올려 본다.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며 화분을 던지는 남자가 있었다. 그 앞에는 그 남자의 목소리보다는 작은 목소리이기는 하지만 남자에게 지지 않을 목소리로 대응하는 여자가 있었다. 어린 나는 한 달음에 우리집에서 삼백 미터 정도의 거리에 있는 이모할머니에게 달려가 도와달라고 울며 말한다. (나의 천식 증상은 그 겨울밤부터 축적되기 시작했을까? 어렸을 적부터 비염으로 고생하던 나는 그날 밤에도 코로 숨을 쉴 수가 없어 숨이 차올라 찬 공기를 입을 벌려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하다 가슴께가 아릿하게 아파왔다. 이모할머니가 오셔서 그 남자와 그 여자에게 뭐라뭐라 이야기하고 돌아가시고 나서 조용히 화분을 치우고, 어질러진 살림살이를 치우는 그 여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두 눈에 불을 켰던 남자는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다음 날부터 나는 나로 인해 큰 소리가 나지 않도록 그 남자가, 혹은 그 여자가 하라는 것은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는다. 밥도 조용히 먹고, 조용히 숙제를 하고, 그 여자가 파트타임 일하러 나간 저녁 퇴근해서 돌아온 그 남자에게 동생이 혼나서 우는 것을 조용히 바라본다. 그 남자가 바깥으로 나가면 그제서야 동생의 등을 쓰다듬어준다. 동생이 잘못해서 내가 혼나도 난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왜 혼 내냐고 따지지도 않고 그저 그 남자가 퍼붓는 소나기를 그냥 맞는다. 밤늦게 퇴근해서 돌아온 그 여자에게 혼나서 억울하다고 말하지 못한다. 큰 소리가 날까봐. 인생이 왜 내 생각대로 조용히, 평화로이 흐르지 않는지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가 없었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게 눈치 보며 조심하도록 나를 누를 때 나는 나에게 유해하다. 에너지를 아끼려고 에너지를 나보다 더 소중히 여길 때 나는 나에게 유해하다. 물을 허투루 사용한 나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을 때 나는 나에게 유해하다. 선물 받은 따뜻한 커피를 그저 마시지 못하고 내일 어떻게 갚을지만을 궁리하는 나는 나에게 유해하다. 바닥을 이미 다 긁어 썼으면서도 더 노력해보라고 나의 등을 떠미는 나는 나에게 유해하다. 힘들어서 곧 쓰러질 것 같으면서도 괜찮다고 더 할 수 있다고 더 움직일 수 있다고 나를 일으켜 세우는 나는 나에게 유해하다. 그러므로 나에게 가장 유해하게 가해한 자는 나였다고 고백한다.

 

오늘의 나는 그 밤 화분을 던졌던 그 남자가 여름휴가 때 나를 위해, 가족을 위해 오토바이로 몇 번이고 반복해서 집에서 강가로 가난한 짐을 나르고 플라스틱 어항을 설치하고 피라미를 잡아 손질하여 튀겨서는 한 명 한 명의 입에 넣어주던 사랑스러운 나의 아버지라는 것을 기억해낸다. 나마저 아프게 하면 안 될 것 같았던,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이 보였던 그 여자, 나의 어머니에게 내 아픈 이야기를 하고 위로받고, 어머니의 힘든 일상을 듣고 함께 눈물 흘리는 삶의 동료로 서로가 앉아있다.

이런저런 기억들이 수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가끔 떠올라 눈물이 흐른다. 지금의 눈물은 가슴이 찢어지는 눈물이라기보다 그 알 수 없는 오해 속에 서서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도 견디고 있었던 나를 위한 눈물이다. 나를 위해 울어주고, 눈물 흘리는 내 곁에 앉아 그 모습을 묵묵히 등 쓸어주며 지키는 나는 나에게 무해하다.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염려하여 움츠려있기보다 다가가 이야기하고 상대가 불편하다고 이야기하면 아, 불편하셨소, 라고 용기 있게 말을 꺼내고 대화를 시도하는 나는 나에게 무해하다. 에너지를 써서 따뜻하게 공간을 만들고 그 속에서 편안히 휴식하도록 배려하는 나는 나에게 무해하다. 따뜻한 커피를 그저 감사히 누리고, 갚을 수 있을 때 기꺼이 커피를 선물하는 나는 나에게 무해하다. 힘들 때 힘들다고 표현하는 나는 나에게 무해하다.

 

나는 나를 가해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피해자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인생이 내 생각대로 조용히, 평화로이 흐르지 않아도 인생이 왜 내 생각대로 흐르지 않는지 누구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다. 인생이 내 생각대로 흘러야 한다는 그 길에서 약간 벗어나 삶이 나에게 거저, 건네 오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린다. 오늘 힘들고 아프더라도 그것을 읽을 준비를 막 시작한 사람처럼 설레임으로, 그냥 피어나는 감사로, 어제 보았던 것을 오늘 새로 보는 것인 양 놀이처럼 보는 그 길에 살포시 한 발 올려놓았기에,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여행자의 눈을 이제 막 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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