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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현경이랑 세상읽기26

<120호> 제목: 비겁함에 대하여 (1) _ 박현경(화가) ※ 아래의 이야기는 픽션일 수 있으며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 및 단체는 실제와 무관한 허구일 수 있습니다. 동시에 이 이야기는 바로 당신의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상황 1] 교장과 교감의 지시가 불합리할 뿐 아니라 황당하기까지 하다는 데에는 다들 이견이 없어 보였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시험지 양식을 뜯어고쳐 문항 배치, 엔터 치는 자리, 스페이스 바 치는 자리 등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모조리 통일하라는 거였다. 평가 업무 담당 부장 교사인 K가 보기에 이는, 과목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무지한 처사인 동시에, 교사의 전문성과 자율성에 대한 침해이기도 했다. 더욱이 교사들이 문제를 출제할 때 이런 자잘한 형식 규칙에 정신을 빼앗길수록 정작 중요한 내용 면에서 실수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걸 K는 지난.. 2022. 4. 27.
<119호> 도움의 품격 (2) _ 박현경(화가) “……그렇게 미웠던 그 사람에 대해서 어느 순간 기적처럼 마음이 바뀌었어요. ‘그 사람이 얼마나 힘들까?’ 온통 그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리고 그렇게 힘든 사람이니까 내가 도와줘야겠다 싶었어요.” 남자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감격하고 있었다. 타인의 힘겨움에 대한 내 공감 능력이 꽤 자랑스러웠다. 그랬기에 당연히 “현경 씨는 역시 참 좋은 사람이에요.” 정도의 반응을 기대했건만, 남자친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내놓은 말은 충격적이었다. “그건 그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죠.” “네?” “그 사람이 얼마나 힘들까만 생각하는 건 그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죠.” “어? 네?” “그 사람이 얼마나 즐거울까를 생각하는 게 그 사람에 대한 예의죠.” 처음엔 그 말이 섭섭하게.. 2022. 3.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