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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98

<129호> 포옹 포옹 윤 아침에 눈을 뜨고 습관처럼 벌떡 일어나 쌀항아리 뚜껑을 재빠르게 열지 않는다. 가만히 눈을 뜨고, 코로 숨 쉬고 있는지를 본다. 뒷목이 편안한지 살핀다. 손바닥도 좀 비벼주고, 얼굴이 붓지는 않았는지 살피며 쓸어주고, 손가락이 붓지는 않았는지, 발뒤꿈치도 좀 만져주고, 왼손은 오른쪽 어깨에 오른손은 왼손 어깨에 올려 감싸 안는다. 토닥토닥. 그리고는 조용히 말해준다. 다시, 아침 맞은 것을 축하해. 오늘도 잘 부탁해. 때론 작은 목소리로, 때론 머릿속으로 속삭인다. 천천히 일어나 숨 들이마시고, 숨 내쉬며 겨울 창밖을 좀 바라보고, 전기주전자에 물을 올리고, 의자에 앉아 기다린다. 물이 데워지면 컵에 반쯤 담고, 찬물을 그 위에 담아 조금씩 조금씩 마신다. 천천히 해도 괜찮아, 말해준다. 나에게.. 2023. 1. 30.
<128호> 연습, 쓰기, 읽기 연습, 쓰기, 읽기 允 날아라 병아리* 병아리는 알 속에서 궁금했어 알 밖의 세상이 그래서 어느 날 겨우겨우 세상에 나왔지 세상을 돌아다녀 보니 쌀 한 알 먹는 것조차 물 한 모금 마시는 것조차 마음 한 조각 얻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지 그래서 병아리는 점점 커다란 알껍질을 만들었어 다른 병아리는 볼 수 없는 아마 병아리 자신도 알 수 없었을 거야 처음에는 단단해져 가는 알껍질 속에서 병아리는 이제 곧 병아리보다 ‘닭’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텐데 어떻게 하지? 생각을 하지 말아볼까? 생각하지 않으면 무슨 의미로 세상을 살아가지? 조용히 있는 것 같아 보이던 병아리는 생각 했어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 너무 답답하고 힘들어 외로워 어떡하지? 그러던 어느 날, 지나가는 바람이 네 탓이 아니야, 라고 .. 2022. 12. 26.
<127호> 모노 드라마 모노드라마 尹 커피다운 커피를 마시지 못하고 하루를 지냈다는 생각에 아쉬움으로 커피머신 주위를 슬금거리던 나에게 커피를 제안하는 사람이 있었다. 솔깃하여 거절하지 않고 받아 마신 늦은 저녁의 옅고 구수한 커피는 어제를 오늘로 이어준다. 어제의 설레임이 오늘의 웃음으로 이어지듯 그렇게, 카페인 덕분에 오랜만에, 한밤중에 깨어 앉아 냉장고가 만드는 소음을 듣는다. 아이의 고른 숨소리도 들려온다, 뒤척이는 몸동작도 본다. 소리와 뒤척임이 있지만, 지금 이 모두가 고요이다. 자다가 깨어나 깜깜한 공기 속에 앉아 있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다. 왠지 충만한 지금이 좋다. 내일 피곤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지금 없다. 칠월부터 시작된 금요일 밤의 데이트. 마을 언니 세 분과 금요일 밤 아홉 시에 모여 마음과 소리를 .. 2022. 1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