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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준11

<제101호> 결혼을 앞두고_박윤준(음성노동인권센터 활동가, 회원) 나는 사람을 부른다/그러자 세계가 뒤돌아본다/그리고 내가 없어진다 일본의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의 첫 번째 연애시에 나오는 구절을 기억해냈다. 맞다. 단지 한 사람을 좋아했을 뿐인데, 그를 불러 내 곁에 있어달라고 말했을 뿐인데, 그 일은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세계가 나에게 범람해오는 것이었다. 연애는 넘치고, 덮치고, 파괴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말을 잃고 새로운 말을 주워섬겨야 했다. 상대는 온 몸의 체중을 실어 상대에게 돌진하는 사람이었다. 슌타로의 시를 빌려 적자면 내가 그를 부르자 세계가 나를 향해 돌진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와 부딪혔다.(나는 으스러졌다) 동시에 그는 배려심이 많은 사람인지라 자신의 욕구나 감정에 푹 빠진 채로 나에게 달려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나에 대해 궁금해.. 2020. 9. 28.
<100호> 바람은 아직도 부른다_박윤준(음성노동인권센터 활동가, 회원) 시인은 아직도, 아직도, 삶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태우는 담배가 늘어나도, 돌벽에 머리를 박고서 애꿎은 민들레 뿌리 뜯어지도록 발길질 하는 날이 많아지더라도, 모락모락 김을 피어올리는 국밥 한 그릇 앞에서 공손한 마음을 가질 줄 아는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빌딩을 올리고, 누군가는 빌딩에 세를 내며 일하고, 누군가는 일하고 버린 쓰레기를 담고, 누군가는 그 바닥을 닦지만, 이처럼 불평등한 세상에서 아직, 미치지 않고, 섣불리 화 내지 않고, 무력하게도, 무력하게도 매일 그 고통을 몸에 단단히 새기는 노동자들이다. 잔근육처럼 박힌 애환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길 잃은 고양이 한 마리에게 측은지심을 느끼는 이들이다. 그에게 먹이를 챙겨주려 정작 돌보지 못한 자기 몸을 더듬고, 빈 주머니 속을 뒤.. 2020. 9. 1.
<99호> 노래하고 춤추고 키스하는 사람들_박윤준(음성노동인권센터 활동가, 회원) 인생은 애저녁부터 고통 속에 파묻혀 있었다. 어딜 가나 못돼먹은 인간들은 있었고 꽤 많은 인간들은 괴롭힘을 당하며 지옥 같은 삶을 견뎌내야 했다. 아프리카 대륙에 살던 사람들은 제국주의 국가들이 만든 거대 선박에 태워져 노예로 팔려갔다. 가서 푼돈도 받지 못하고 고된 일을 해야만 했다. 그 중 스페인 선박을 타고 온 흑인들은 쿠바라는 스페인 식민지이자 섬나라에 내렸다. 그들은 사탕수수를 베고 설탕을 만들어 자신들이 타고 온 선박과 비슷한 배에 자루째 싣어야했다. 미국으로, 유럽으로 떠나갈 설탕들이었다. 설탕의 맛은 노예들이 처한 고된 노동과 가난과 비례하듯 달콤했다. 사는 일의 고달픔에 관해서는 사실 지구 반대편인 쿠바까지 갈 필요도 없다. 어제 오늘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사실 .. 2020. 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