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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준11

<제95호> 지랄탕 한 모금 하실래예?박윤준(음성노동인권센터 활동가, 회원) 4년이 넘어도 폰을 바꾸지 않고(잃어버리지 않고, 부수지 않고) 잘 쓰던 나였다. 그런 내가 1년간 사용하던 폰을 네 번 바꿨다. 하나는 재작년 여자친구와 연말 여행 중에 보도블럭 위에 떨어뜨렸는데 떨어진 각도와 세기가 매우 적당하여 액정이 산산조각 났다. 바꾸지 않고 몇 개월을 꿋꿋이 쓰다가 작년 가을이 되어서야 새로운 폰을 샀다. 그런데 얼마안가 연말 모임에서 잃어버렸다. 예전에 쓰던, 이제는 골동품이 된 손바닥 크기만한 핸드폰을 다시 서랍장에서 꺼내들었다. 세상의 외피는 5년 전에 비해 더 높은 아파트들이 스카이라인을 침범하고, 산업단지와 개별입지로 들어선 공장들이 농지를 침범하고, 세련된 곡면을 가진 자동차들이 좀 더 늘었고, 사람들의 표정은 읽을 수 없는 무언가가 된 것 같았으나 큰 변화는 없었.. 2020. 4. 28.
<제94호> 벽제에서_박윤준(음성노동인권센터 활동가, 회원) 그곳은 벽제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싸늘한 몸이 불구덩이에 들어갔다가 백골과 뼈부스러기가 되어나왔다. 백골은 살짝 힘을 주었을 뿐인데 바스라졌다. 나를 낳고 안았으며 장난치며 씨름을 하던 몸. 가끔은 때리고, 자주 소파위에 누워있었던 몸. 해고 통보를 받은 뒤엔 실없이 웃고, 암 선고를 받은 이후엔 말 없이 창밖을 응시하던 몸. 그 큰 몸이 산소호흡기를 달고 누워있던 중환자실에서는 왜소해보였다. 그리고 그 몸이 산산조각으로 으스러지는 순간은 내가 안주해오던 세계가 부서지기엔 너무 감쪽같이 짧았다. 남은 세 가족에게 닥친 시간들은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생채기를 내었다. 일상을 받치던 커다란 기둥 하나가 무너져 내린 느낌이었다. 그의 몸은 사라졌으나, 나의 의식과 몸은 ‘아빠가 있다’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2020. 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