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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현경이랑 세상읽기26

뛰어넘다(franchir) 뛰어넘다(franchir) 박현경(화가) 1. 그림을 그린다는 건 ‘뛰어넘는’ 행위이다. 그리는 이와 대상 사이의 간극을 ‘뛰어넘고’, 3차원의 물체를 2차원의 화면에 표현해 내는 어려움을 ‘뛰어넘고’, 상상력의 부족을 ‘뛰어넘고’, 생각의 틀을 ‘뛰어넘고’, 익숙하고 편한 방식으로 그리려 하는 관성을 ‘뛰어넘고’, 완성하지 못할지 모른다는 혹은 완성해도 쓰레기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뛰어넘고’, ‘뛰어넘고’, 또 ‘뛰어넘는다’. 생각하면 나는 매일 새벽, 그리고 주말마다, 방바닥이나 작업 책상에 웅크린 채로 그렇게 뛰어넘고, 뛰어넘고, 또 뛰어넘고 있었던 것이다. 2. 나의 연작 ‘네가 보고 싶어서’ 중 58번째 작품에는 이런 문장이 부제(副題)처럼 달려 있다. ‘모든 두려움을 뛰어넘어, 마침내 널.. 2024. 1. 26.
나의 새벽 나의 새벽 박현경(화가) 2023년 11월 6일 월요일 오늘의 새벽 작업. 4시 50분부터. ‘네가 보고 싶어서 54’의 밑그림 작업. 일단 왼손으로 연필 스케치를 한다. 투박한 선은 투박한 대로 비뚤어진 선은 비뚤어진 대로 둔다. 예쁘고 세련되게 그으려 하지 않는다. 연필 스케치 위에 오른손으로 색연필 선을 긋는다. 왼손이 그어 놓은 서툰 연필 선을 오른손이 교정하지 않는다. 오른손은 왼손을 따라 긋는다.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 속 선 긋는 새벽. 2023년 11월 7일 화요일 새벽 작업 기록. 5시 정각부터. 머리 부분을 채색했다. 무엇이 될지 나도 모르지만 일단 가 보기로 한다. 오늘 하루도 마찬가지. 두려워하지 말고 가 보자. 쭉 가 보자. 2023년 11월 8일 수요일 새벽 작업 기록. 4시 40.. 2023. 12. 26.
용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용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박현경(화가) 나는 겁쟁이다. 어릴 때부터 걱정과 불안, 두려움이 유난히 많았다. 요즘도 하루에 수백 번 ‘하느님, 저는 두렵습니다. 저는 두려워요.’라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몇 년 전부터는 공황장애도 생겼다. 차를 20분 이상 타려면 신경안정제를 먹어야 한다. 지금도 나는 두렵다. 이 글을 완성하지 못할까 봐. 이렇게 두려움이 많은 나지만 돌이켜보면 대담한 행동을 한 일이 몇 번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2013년 2월, 나는 보은에 있는 카르투시오 수도원 입회를 간절히 희망하고 있었고 이미 수련장 수녀님의 지도하에 수도원 생활 체험까지도 마친 상태였으며 몇 월 며칠에 짐 싸서 들어오면 된다는 말씀까지 들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쩐지 돌다리를 마지막으로 한 번 꼭 두드.. 2023. 1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