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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마음거울86

나의 소원 - 정호승 나의 소원 정호승 내가 죽기 전에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일은 철도 기관사가 되는 일이다 서울역에서 승객이 가득 탄 기차를 몰고 멀리 여수나 목포로 떠나는 일이다 신의주로 양강도 백두산으로 떠나는 일이다 내가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언젠가 꼭 한번은 가보고 죽어야 하는 인간의 진리의 길을 향해 침목을 깔고 나만의 선로를 놓아 세상 사람들 모두 잠든 새벽에 기관실에 높이 앉아 바다를 향해 달리는 일이다 차창을 스치는 갈매기와 섬들에게 손을 흔들고 바다에 내린 승객들로 하여금 수평선 위를 하루 종일 산책하게 하는 일이다 무인도에도 잠시 머물러 인생의 썰물과 밀물을 오랫동안 바라보게 하고 어느 봄날에 다시 기차를 몰고 평양을 지나 백두산역을 향해 달리는 일이다 백두산이 보이는 기관실에 높이 앉아 천지의 깊고 고요.. 2023. 7. 25.
거대한 뿌리 - 김수영 거대한 뿌리 김수영 나는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 어쩌다 셋이서 술을 마신다 둘은 한 발을 무릎 위에 얹고 도사리지 않는다 나는 어느새 남쪽식으로 도사리고 앉았다 그럴 때는 이 둘은 반드시 이북 친구들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앉음새를 고친다 8.15후에 김병욱이란 시인은 두 발을 뒤로 꼬고 언제나 일본여자처럼 앉아서 변론을 일삼았지만 그는 일본대학에 다니면서 4년 동안을 제철회사에서 노동을 한 강자다 나는 이사벨 버드 비숍여사와 연애하고 있다 그녀는 1893년에 조선을 처음 방문한 영국 왕립지학협회 회원이다 그녀는 인경전의 종소리가 울리면 장안의 남자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갑자기 부녀자의 세계로 화하는 극적인 서울을 보았다 이 아름다운 시간에는 남자로서 거리를 무단통행할 수 있는 것은 교군꾼, 내시, 외국인.. 2023. 6. 26.
<117호> 무해한 덕질을 꿈꾸며_ 계희수(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활동가) 새해 벽두부터 뜬금없이 ‘덕질’ 이야기를 해본다. 덕질이라는 단어는 누군가에게는 생소하겠지만, 이미 국어사전에도 등재가 되어있다. (사전에 올라있는 건 글을 쓰기 위해 찾다가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이다!) 덕질은 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일을 뜻한다. 덕질의 대상은 사람부터 작품, 취향, 물건 등 무엇이나 될 수 있다. 나에게 덕질이란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이나 공연, 방송 영상을 찾아보거나 응원하는 배우의 작품을 감상하는 소소한 활동이지만, 일상에 활력을 주는 재미 요소임에는 분명하다. 덕질의 대상은 얼마 못 가 계속 바뀌는데, 이 때문에 나의 덕질을 진짜 덕질이라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나름 소중한 나의 덕질 라이프가 최근 난관에 봉착했다. 얼마 .. 2022. 1. 26.